금융당국이 오는 28일 계획했던 제9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돌연 연기했다. 이 회의에선 이달 말 발표 계획이었던 은행과 은행지주에 대해 비금융업 진출을 허용·확대하는 이른바 '금산분리 완화'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경기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은행이 무분별하게 사업 확장에 나서면 시장에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발목이 잡혔다. 당국은 조만간 관련된 안건을 추가해 재차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24일 금융규제혁신회의 전문위원에게 예정됐던 제9차 회의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금융위는 논의 안건이 축소되고 추가 보완 등이 필요해 부득이 취소됐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초 금융·비금융 융합 방안을 먼저 진행하고 이후 금융지주에 대해 비금융자회사 출자 한도를 넓히기로 했지만 민간 전문위원 측에서 안건을 좀 더 추가해 논의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면서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했고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발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부터 금산분리 완화를 취임 일성으로 내세우고 은행과 금융지주에 대해 비금융 진출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비금융 업무 범위와 관련해 현행 포지티브(열거주의) 방식을 추가 보완하는 것뿐만 아니라 네거티브(포괄주의)로 전환해 진출이 불가한 업종만 빼고 모두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아울러 현행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지주·은행은 비금융 회사 지분을 각각 5%, 15% 이상 취득할 수 없었는데 이런 출자 한도 역시 대폭 완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금융지주회사들은 은행업, 보험업법 등에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분 투자가 15%까지 허용된 만큼 여기에 준해 금융지주 투자 범위도 늘려 달라고 요구했고 금융당국도 이런 논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판 부처 간 조율 과정에서 발표가 연기됐다. 대내 경기가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력과 영업력을 갖춘 은행이 사업 확장에 나서면 골목상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은행이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등 영세 사업자에게는 이를 막아낼 여력이 없다.
다만 제9차 회의는 은행·은행지주의 무분별한 확장에 대응할 수 있는 안건을 조율해 다음 달 중 일정이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24일 회의가 오는 28일로 순연됐고, 다시 28일 회의가 순연된 만큼 다음 회의는 늦어도 다음 달에 열릴 것이란 관측이다.
회의에 정통한 관계자는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해) 금융규제혁신회의 안건이 추가 보완된다"면서 "무기한 순연은 아니고 조만간 회의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