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 전 수사단장은 11일 입장문을 통해 “국방부 검찰단은 적법하게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했고, 수사의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 조직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십 차례 해병대사령관에게 적법하게 처리할 것을 건의했다”며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다는 사실을, 이첩하기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보고하고 그에 따라 적법하게 사건을 이첩했다”고 강조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왜 오늘 이 자리까지 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해병대는 충성과 정의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다. 저는 해병대 정신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도 모르고 정무적 판단도 알지 못한다”며 “다만 채 상병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께서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장례식장에서 여야 국회의원 및 국방부 장관마저도 유가족에게 철저한 진상을 규명해 엄정하게 처벌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고 덧붙였다.
해병대 제1사단 소속이던 채 상병(당시 일병)은 지난달 19일 오전 9시쯤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구명조끼 착용 없이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이후 해병대 수사단은 이번 사고 경위 등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였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7월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 보고서를 결재까지 끝냈다.
하지만 이 장관은 같은 달 31일 돌연 해병대에 언론 브리핑과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언론과 경찰에 공개할 내용에서 책임자 범위와 혐의 사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박 전 수사단장은 이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명시적으로 전달받은 적 없고, 오히려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채 상병 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군 관계자들의 혐의 내용을 빼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이달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보고서를 이첩했고,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했다. 국방부는 이와 동시에 박 전 수사단장을 보직 해임했으며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장관보다 윗선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채 상병 사망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 명단에서 임성근 1사단장, 박상현 1사단 7여단장을 제외하라는 지시가 해병대 수사단에 전달됐다는 주장이다. 국방부는 이른바 ‘윗선 개입 의혹’에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