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했다가 보직해임된 해병대 수사단장 박 모 대령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사했고, 이첩 내용을 군 수뇌부에 대면보고 했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조사 결과의 경찰 이첩을 대기하라는 명령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령은 이날 ‘수사단장 입장문’을 통해 “수사 결과 사단장 등 혐의자 8명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했고,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해병대 사령관·해군참모총장·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 보고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 대령은 “사건발생 초기 윤석열 대통령께서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셨고, 저는 대통령의 지시를 적극 수명했다”고 강조했다.
박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채 상병 사망 사고를 수사함에 있어 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하고, 그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유가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30년 가까운 해병대 생활을 하면서 군인으로서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항상 정정당당하게 처신하려고 노력했다”며 “해병대는 정의와 정직을 목숨처럼 생각한다. 그런 해병대 정신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다.
박 대령은 “저는 국방부 검찰단에 집단항명의 수괴로 형사 입건돼 있고, 해병대 수사단장에서는 보직해임됐다”며 “앞으로 제게 발생되는 일들에 대해 시종일관 정정당당하게 임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해병대 제1사단 소속이던 채 상병(당시 일병)은 지난달 19일 오전 9시쯤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구명조끼 착용 없이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이후 해병대 수사단은 이번 사고 경위 등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였다.
박 대령은 지난 7월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 보고서를 결재까지 끝냈다.
하지만 이 장관은 같은 달 31일 돌연 해병대에 언론 브리핑과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언론과 경찰에 공개할 내용에서 책임자 범위와 혐의 사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령은 이달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보고서를 이첩했고,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했다. 국방부는 이와 동시에 수사단장 박 대령을 보직 해임했으며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장관보다 윗선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채 상병 사망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 명단에서 임성근 1사단장, 박상현 1사단 7여단장을 제외하라는 지시가 해병대 수사단에 전달됐다는 주장이다. 국방부는 이른바 ‘윗선 개입 의혹’에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해병대는 지난 8일 해병대사령부에서 정종범 부사령관을 심의위원장으로 하는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고 박 대령을 보직 해임했다.
한편, 국방부는 신범철 차관이 이번 사건에 관여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법적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 언론은 신 차관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임성근) 사단장은 빼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는 “신 차관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채 상병 사망 사고와 관련한 문자를 보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특정인을 언급한 바 없다”며 정정보도 요청과 함께 법적 절차를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