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LH 철근 누락' 사태는 설계, 시공, 감리 등 건설 현장에서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한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라고 지적했다. 발주처의 저가 입찰 관행, 설계를 검증해야 할 시공사의 책임 부재, 부실 감리 등이 한데 어우러진 엉망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이 사태를 키웠다는 설명이다.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도 사태를 키웠다. 발주처인 LH가 '슈퍼 갑'인 상황에서 일감을 받아야 하는 시공사, 설계사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 현장을 호령하는 LH의 전관예우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제2·3의 '순살 아파트'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순살 아파트' 사태는 설계와 시공사, 감리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LH 전관예우 문화가 빚어낸 전형적인 '이권 카르텔'이 원인"이라며 "일부 업체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LH 현장에서 철근 누락이 무더기로 적발됐고 이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만큼 이번 기회에 썩은 구조를 적극적으로 도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사고 경위에 대한 책임 소재 발표가 지금보다 더 명확해야 한다"면서 "LH 발주 현장은 업체, 담당자가 다 비슷한 풀(pool)인 곳이 많은데 책임을 뭉뚱그려 발표할 게 아니라 설계, 구조계산, 시공, 감리 등 문제가 발생한 현장 담당자를 세부적으로 공개해 상벌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도 "철근 값을 빼돌리기 위해 철근을 누락했다기보다는 건설 관행, 관습적인 분위기가 이번 사태의 발단이었던 것 같다"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정부도, 건설 현장도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는 건설·감리 업체는 퇴출시킨다'는 보다 명확한 마인드가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건설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창영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광주대 건축학부 교수)은 "설계업체의 구조 분석 실패, 시공 부실, 설계와 시공의 적합성을 확인할 사회 안전 시스템인 감리 기능의 붕괴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한국 건설 생태계가 지속할 수 있을지 전반적으로 시스템을 점검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송 이사장은 "광주 화정 아이파크, 인천 검단신도시 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 무량판 구조는 슬레브 하중을 기둥이 그대로 받기 때문에 힘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무량판 구조를 특수 구조 개념으로 받아들여 전문 기술자들이 강도 높은 건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철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코로나 사태 때 공사 현장은 급증했는데 전문인력이 한국에 못 들어오면서 비숙련 노동자만으로 수많은 현장을 감당해야 했던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면서 "무량판은 구조적으로 전단보강근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에 대해 LH를 비롯해 기존 설계업체들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특히 LH는 발주처이기도 하지만 감독관청이기 때문에 업체에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장 감독을 했어야 했음에도 관행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이 과정에서 감리업체 책임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설계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이고, '설렁설렁 해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을 심게 한 제도와 정부 태도도 문제였다"면서 "부실한 설계나 시공을 해도 넘어가는 일종의 관행이 그동안 현장에 만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발주처가 설계를 똑바로 하고 시공을 점검할 책임이 가장 큰 데도 국내 건축법은 현장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건설 단계마다 공정하고 명확하게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제도를 총체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