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민 PD는 MBC에 예능 PD로 입사해서 '무릎팍도사'와 '마이리틀텔레비전2' 등 여러 프로그램들의 기획 및 연출을 맡았다. 이후 카카오로 자리를 옮긴 그는 카카오TV 토크쇼 '톡이나 할까'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와 기획력의 원천과 PD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만으로 11년 정도 일을 했는데 많이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처음 PD 생활을 MBC에서 했고 8년 정도 일을 하고 카카오TV로 이직을 해서 3년 정도 일을 하고 있는데요. MBC에 처음 공채에 붙었을 때 너무 신이 나서 스스로 놀랍고 감동적이었어요.
그때 벅찬 느낌이 너무 고스란히 보여서 쑥스러웠어요. 그래서 지울까도 생각했지만 그대로 뒀는데 그대로 뒀더니 가끔씩 그 글을 보면 10여년 전에 제가 처음 PD 일을 시작할 때의 초심이나 마음들이 너무 잘 보여요. 그래서 볼 때마다 그때 마음과 지금 일을 하면서 마음이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서 위로를 받아요.
-성공한 덕후(성덕)의 경험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나.
PD 일은 성덕의 연속이에요. 사실 엄청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많지 않아요. 제가 좋아했던 아티스트 중에서 자기 영역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 가운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때는 10대였고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방송을 만드는 직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줄곧 좋아해왔던 분들의 매력을 알고 있으니까, 이 방송에는 내가 좋아하는 분이 출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연 섭외 연락을 드리면 감사하게도 같이 작업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단순히 유명인과 작업해서 좋은 게 아니라 어린시절에 저한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줬던 아티스트인데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문화적인 공급이 왕성하지 않았거든요. 그 와중에 빛나는 예술가, 창작자들이 있다는 건 자기 영역에 있어서 기반이 단단하게 다져 있다는 거예요. 그런 대가들의 면모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런 분들이 어떤태도로 자기 영역에 일들을 해나가고 같은 일을 오랜 기간 해오는 모습을 같이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감동적인 일이에요.
-토크쇼 '톡이나 할까'라는 제목은 김이나 작사가 섭외 후에 정해진 건가.
네. 처음에는 카톡으로 인터뷰 하는 프로그램을 해야겠다고 기획을 하던 차에 김이나 작사가님이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안을 드렸는데 감사하게도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업무하면서 만나게 되는 분들은 메일이나 문자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카톡을 하는 것 자체가 가벼운 것 같은데 무게감이 크거든요. 그런 것들이 잘 담겨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톡이나 할까?'라는 느낌을 들게 한 것 자체가 김이나 작사가님 이름이었다는 것도 저한테는 좋은 일이었어요.
-기획력과 실행력은 어디서 나오나.
김이나 작사가님은 마감이라고 늘 말씀하세요. 내 상황이 어떻든 이때까지 줘야된다는게 직업인들의 원동력이에요.
방송 PD의 경우는 퀄리티나 내 상황이 어떻든 편성에 맞춰서 무조건 방송이 나가야 되는 거예요. 이걸 기준으로 두고 나머지는 이것에 맞춰야 되는 거예요. '쫓김'이 기획력과 실행력의 제일 큰 원동력이에요. 그게 직업인의 미덕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약속된 시간에 정확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되는 거요.
-어떤 영감들이 콘텐츠가 되나.
직업 창작자는 영감이 찾아와서 콘텐츠로 만드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영감이 찾아왔다고 해서 바로 섭외를 하고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직업 창작자들이 창작을 하는 과정에는 영감보다는 틀이나 조건, 기준들이 먼저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영감들을 어떻게든 끌어오게 되는 연속인 것 같아요.
-취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데 콘텐츠를 만들 때 취향이 어떤 영향을 주나.
취향은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그 사람이 성취하고 감상하고 수용하고 창작했던 굉장히 많은 경험의 복합적인 유기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취향이라는 건 다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사람의 역사이자 누적된 데이터 같은 거죠. 그게 단지 감상할 때만 반영이 되지 않겠죠. 창작을 할 때도 반영이 될 것이고 자기의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자기 눈에 예뻐보이는 방향으로 가겠죠. 취향은 분리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능감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뭔가.
예능감은 제가 생각할 때 자기 객관화가 잘된 사람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어떻게 해야 잘 보일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해야 돋보일 것인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타이밍을 잘 못 잡고 훌륭한 뭔가를 못하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즉 메타인지가 발달돼 있는 분 일수록 이런 상황에 적절한 센스 있는 걸 해요. 예능감있는 사람들은 내가 공격을 당했을 때도 능숙하게 웃음으로 소화하면서 상대방에게 무례해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재밌게 소화하는 사람을 예능감 좋다고 해요.
그걸 소화하려면 한발 떨어져서 나를 볼 수 있고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도 기분 나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맥락을 파악하고 재밌게 넘어가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게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다고 생각하고요.
-바라던 어른의 모습이 됐나.
어떤 어른도 어른스러운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단단해 보이는 어른들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보였지만 그때 당시 그 어른도 많이 힘들어했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런 어른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겠죠.
오래 일하는 PD이고 싶어요. 예능 PD는 수명이 짧거든요. 드라마나 시사교양, 라디오에 비해서 예능이 유독 유행이 빠르고 선배가 돼서 퇴물이 된다는 두려움이 커요. 독립PD가 됐건 회사에서 일하는 PD가 됐건 오래 꾸준히 일하는 PD이고 싶어요.
-책 '직면하는 마음' 출간했다. 제목 어떤 의미인가.
담당 편집자님이 제 원고들을 다 읽어보시고 골라주신 제목인데 제가 PD 일을 하면서 했던 여러가지 고민들과 생각들을 적은 다음에 내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서 만들어서 바깥으로 내보낸다는 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결과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주하고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지 않나 해요.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직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고 그걸 키워나가야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창작자에게 한 말씀 해달라.
콘텐츠가 레드오션이 돼가고 있는 시대에 힘내고 이 상황을 열심히 직면해서 오래오래 잘 먹고 살만큼 만들면서 행복하게 일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