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18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박민식 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500여 명이 추모식에 참석한다. 행사는 추모식사, 내빈 추모사, 추모의 노래, 헌화·분향 및 유족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박 장관은 “정부는 이 전 대통령을 비롯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들이 제대로 예우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보훈부는 서울에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지는 중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인근, 종로구 이승만 연구원과 낙산근린공원 등이 검토되고 있다.
원로배우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은 서울 강동구에 있는 본인의 사유지 약 4000평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신 회장은 고향이 황해도 평산으로, 이 전 대통령과 동향이다.
1875년 황해도 출생인 이 전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를 조직하고 협성회보와 매일신문 주필로 활동했다.
1898년 독립협회 해산과 고종황제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돼 1904년 8월까지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됐다. 감옥에서 청일전기를 편역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했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이 전 대통령은 조지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1910년 귀국했다.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 대표로 임명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태평양잡지’, ‘태평양주보’를 발간했다.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해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4월에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을 폭로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 업적으로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1965년 90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보훈부는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에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등 정치, 경제, 교육,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