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분쟁을 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제3자의 개입이다. 제3자 개입에 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승패는 역전될 수 있다. 또한 제3자 지위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간혹 허풍을 떨거나 자기의 능력을 과장되게 포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싸워 본 적이 없으니 패배한 일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패배한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발생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정보 폭포(Information Cascade)라는 현상이 있다. SNS 발달에 의해 초연결 사회로 가고 있지만 자기만의 정보 그리고 자기가 만들어낸 정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의 대부분은 짜집기한 정보이며, 이러한 정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피할 수도 없고, 이익이 되는 정보도 거의 없다. 대다수가 독립적인 판단 없이 서로의 행동을 따라할 경우, 집단이 크다고 해서 그들의 정보가 꼭 옳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경영권 시장에서 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경영권에 큰 이익이 있고, 큰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맹수와 독충이 우굴거리는 정글 속에 있는 보물을 찾아 소유하는 게임이다. 맹수와 독충이 무서워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는 자들은 보물을 차지할 수 없다. 주의할 점은 정글 속에 있는 보물을 찾아가는 것보다 보물을 찾은 후에 시장으로 가지고 나오는 과정이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다. 보물을 찾아 정글로 들어가는 탐험대는 서로 힘을 합치지만, 보물을 찾고난 후에 탐험대는 시장에 운반하는 과정에서 분배의 권리를 두고 분열하거나 다툼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격안관화'의 전략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M&A병법 36계 중에서 9계에 속하는 격안관화(隔岸觀火)의 전략을 펼치는 방법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6년 당시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삼성그룹은 필자에게 컨설팅을 의뢰하였고, 필자는 삼성그룹에 격안관화의 계책을 사용할 것을 조언했지만 삼성그룹에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기 때문에 되돌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필자의 조언을 듣지 않고 강공책을 사용했다.
당시 기아자동차 그룹은 기아자동차를 모기업으로 총26개 계열사에 5만5000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1996년말 기준으로 자산총액 14조5000억원으로 재계8위, 매출액은 12조1400억원으로 재계 7위의 재벌기업이었다. 하지만 ①기아특수강과 아시아 자동차의 경영난, 문어발 경영, 전문경영인의 독선, 외국인 대주주의 지분구조, 노사대립, 정부의 인위적인 투자조정, 자동차 사업의 부진, 자금악화와 금융권의 자금회수, 지역감정, 관료조직의 병폐, 노사문제, 정치권 위기관리 능력부재 등의 원인으로 복합적 부실에 빠져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기아자동차 그룹의 채권금융단에서는 김선홍 회장이 사표를 내면 부도유예기간을 연장해주겠다고 제안을 했지만 기아자동차에서는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고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등은 화의신청, 기산은 법정관리 신청하는 방법을 써서 채권단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후 기아자동차 김선홍 회장은 기아자동차의 주식을 매입하고, 부도 직후 비자금 180억을 조성해 기아그룹의 제3자 인수를 막기 위한 정계 및 관계의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기아자동차는 사실상 부도상태에서 국제 공개입찰 절차를 밟게 되었으며, 참가자격으로 국내의 모든 자동차업체와 기아보다 생산실적이 큰 세계 20위권 이내 자동차 업체로 한정했다. 그 결과로 대우, 삼성, 현대, 포드 등 4개 업체가 참여하여 기아자동차 인수는 4파전이 되었다. 하지만 입찰참여 업체의 최저가 미만 응찰과 추가 부채탕감 요구 그리고 기아의 과도한 부채, 미숙한 업무행정, 기아를 둘러싼 관련업체간의 상호견제, 정부의 구조조정능력 부재 등의 원인으로 1차 유찰되고, 기아자동차의 천문학적 부채에 대한 탕감계획을 중심으로 2차 입찰에 들어갔지만 포드는 포기하고 대우 삼성, 현대 등 3개 업체만 참여했으나 결국 유찰되었다. 그리고 3차 입찰에서 현대자동차로 낙찰되었다.
1993년 자동차 산업에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삼성그룹은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기아자동차를 삼성생명을 비롯한 계열사를 동원하여 적대적인 방법으로 인수하려 했다. 기아자동차는 이에 대항하여 우리사주에 대한 지원확대, 전 사원의 주식사기 운동전개, 기아그룹 협력회사와 거래기관의 기아지분 확대유도, 자사주 매입 적극추진 및 이를 위한 기금확대 등을 통하여 지분을 추가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고, 재벌그룹의 자금력을 이용한 기업탈취라는 부정적 여론을 촉발시켜 삼성의 적대적 M&A를 저지시키려 하였다. 삼성은 재벌답게 정치권, 경제관료, 언론 등을 동원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워 진행했지만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기아자동차 인수시도 과정에서의 금품 전달과 수수 의혹 등이 부각되었고, 참여연대는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전직 경제부총리 등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경제부총리는 기아자동차에 대한 법정관리라는 폭탄선언을 했고, 삼성그룹에서는 “자동차 산업의 구조재편 필요성과 지원방안 보고서”를 작성하여, 한편으로는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과 정부의 세제지원 및 규제완화 등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자동차시장의 전반적인 공급과잉 속에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기아자동차의 경우에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고 밝혀 언론플레이를 진행했다. 또한 삼성생명을 비롯한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에서 기아자동차에 빌려주었던 5000억원 상당의 자금을 상환시키는 전략도 사용했다. 기아자동차의 경영진과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와 삼성 간의 유착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로 정부관료와 정치권의 협조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기아자동차 인수에 실패했다.
삼성그룹은 정계, 재계, 언론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강한 로비력과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만 믿고 강공책을 사용했지만 실패하게 되었고, IMF 경제위기로 인해 그룹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격안관화의 계책을 적절하게 사용한 현대자동차 그룹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여 국내 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게 된 것은 물론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삼성그룹은 현대자동차 그룹의 어부지리 전략에 도움만 주고 끝난 셈이 되었다. 경영권을 취하는 최상의 방법은 싸워서 빼앗는 것도 아니고,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하는 것도 아니며, 싸우지 않고 위기를 활용하여 부드럽게 인수하는 것이다.
성보경 필자 주요 이력
△DBL(Drexel Burnham Lambert) 전략무기분야 M&A팀장 △리딩투자증권 M&A본부장 △우리인베스트먼트 회장 △세종대 주임교수 △(사)한국말산업중앙회 부회장, 말산업클러스터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