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미국과 독일 디리스킹 전략의 교훈

2023-07-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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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올해 상반기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대중 전략을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1위의 제조대국인 중국 경제와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정학적 리스크를 축소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 변화에 맞춰 EU와 미국의 주요 각료가 중국을 방문하여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중국은 다변화를 통한 대중 의존도 축소라는 점에서 디리스킹이 디커플링과 근본적 차이가 없다고 반발해왔다. 디리스킹을 발표한 이후에도 미국은 보복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수출통제도 계속 강화해 왔으며, EU도 중국이 내정간섭으로 주장하는 인권과 대만 문제에 대한 지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 초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방중은 디리스킹이 디커플링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중국의 주장을 증명해 주었다. 올 4월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미·중 사이의 경제적 상호의존 때문에 디커플링이 실현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양국 모두는 물론 전 세계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중국은 옐런 장관의 방중에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 경제를 책임지는 리창 국무원 총리,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 리강 인민은행 총재가 옐런 장관과 만나 현안을 논의하였다.
솔직하고 실용적이며 건설적인 대화에도 불구하고, 옐런 장관은 중국에서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국가안보를 보호하는 데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는 7월 10일 미국 매체 마켓플레이스 인터뷰에 요약되어 있다. 국가안보가 경제적 이익에 우선한다는 입장은 “심지어는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충돌할 때에도 우리는 [국가안보] 우려를 굽히지 않을 것이다”는 4월 연설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7월 13일 내각회의에서 역사상 최초로 의결된 독일 정부의 ‘중국 전략’보고서에 대해서도 중국은 상당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 11월 초 20차 당대회 이후 서방 지도자 중에 최초로 올라프 숄츠 총리가 독일 대기업 경영자들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리창 총리는 6월 20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중국 경제포럼에 참석하여 양국 경제교류 확대를 지원하였다. 이런 고위급 교류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는 다변화를 통한 대중 의존도 축소를 디리스킹 전략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였다. 중국과 더 많은 거리를 두겠다는 디리스킹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대중 관여 정책인 ‘무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와 단절을 의미한다.
중국의 인권과 대만 정책에 비판적인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13일 메르카토르중국연구소(MERICS)에서 이 보고서의 정치적 의미를 부연하였다. 그녀는 “중국 시장에 매우 의존하는 기업들은 미래에 재무 리스크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중국에 투자한 독일 기업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피해를 입었을 때 정부가 보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디리스킹에 대한 중국의 반응 역시 매우 부정적이다. 지난 14일 왕이 공산당 정치국 위원은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에게 ‘디리스킹을 디커플링의 다른 이름’이라고 지적하였다.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도 “디리스킹과 '의존도 축소'라는 이름으로 경쟁과 보호주의를 시행하는 것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미국과 독일은 디리스킹을 디커플링과 구분하는 데 실패하였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여 리스크를 증폭시켜 버렸다는 점에서 미국과 독일의 디리스킹 전략은 우리에게 모범사례가 아니라 반면교사이다.
우리 실정에 부합하는 한국형 디리스킹 전략을 모색할 때 세 가지 문제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미국과 독일에 비해 대중 의존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다변화를 통한 대중 의존도를 축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발언한 것처럼,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 시장을 다 잃어버리고 갑자기 대체 시장을 찾아내긴 힘들다.” 2021년 10월 요소수 부족 사태 직후 한국무역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1~9월 기준 관세·통계통합품목분류표(HSK) 10단위 수입품목 1만2586개 중 단일국 수입 비중이 80% 이상 품목이 3941개이다. 국가별로는 중국(1850개)이 미국(503개)과 일본(438개)보다 월등히 많았다.
둘째, 중국 국경 밖으로 투자를 철수하는 지리적인 의미의 탈중국만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세계 수준의 중국 기업이 해외로 많이 진출하였기 때문에, 중국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중국의 영토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배터리 기업인 CATL은 미국 미시간주에서 포드사와 합작기업을 설립하는 에너미쇼어링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진정한 의미의 탈중국은 중국 기업과 경쟁에서 승리할 때만 달성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출뿐만 아니라 수입에도 주목해야 한다. 대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수출과 수입 모두 축소되어야 한다. 2022년 초부터 수출은 크게 줄고 있지만 수입은 별로 줄지 않았다. 그 결과 작년 9월부터 대중 무역적자가 9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수입의존도가 낮아지지 않으면, 중국의 수출통제에 대한 취약성을 축소할 수 없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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