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종목에 편입한 신탁의 경우 시가를 투자원금(취득원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투자 판단에 오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취득원가로 시가를 평가하면 실제는 원금이 100% 손실 나더라도 투자자가 받아보는 운용보고서에는 0으로 기재되기 때문이다.
10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비상장주식 편입 신탁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사들은 시가를 취득원가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득원가로 평가한 시가를 그대로 반영하다 보니 운용보고서에 기재되는 손익은 실제와 다른데, 금융사는 이와 같은 운용보고서를 바탕으로 투자자에 보고하고 있다.
일례로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지난 2021년 말 ㈜두나무를 추종하는 신탁에 투자했던 A씨는 손익이 마이너스 80%대라는 사실을 투자한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이마저도 평소처럼 영업직원과 전화 통화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A씨는 지난해 말 한 차례 연장하는 계약도 손익이 마이너스 80%대인 점을 안내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 것으로 파악됐다. 초고위험 투자 상품인 만큼 1년마다 연장 계약을 맺도록 설계됐지만, 실제 손익에 대한 안내 없이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을 인지한 A씨는 그동안 자신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한투 측에 책임을 물었으나, 한투 측은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절차대로 안내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A씨는 “그간 이메일로 운용보고서를 보냈다는데 읽지도 않는 이메일로 보냈을 뿐, 수 차례 통화하고 새 상품에 가입하라고 권유하는 모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상황을 안내해주지 않았다”며 “보고서를 나중에 보니 손익에는 항상 ‘0’으로 기재했는데 이걸 본다 해도 원금이 80%나 빠졌는지 누가 알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A씨 상황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현행 제도에서는 한투 측에 책임을 지우기는 애매하다는 것이 투자업계 중론이다.
한 대형증권사 한 관계자는 “담당자가 투자자에게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을 때 언질을 해줬으면 투자자는 엑시트를 하던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는 담당자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정도지 책임을 지우기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말 금융당국은 비상장 자산을 편입하는 펀드의 공정가액을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전 금융계를 휩쓸었던 ‘사모펀드 사태’ 이후 시장가격이 없는 자산은 운용사가 공정한 가격(공정가액)으로 자체 평가하는데, 운용사의 평가 과정이 불투명하고 신뢰성 또한 낮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는 신뢰도가 낮더라도 운용사가 자체 평가해 제시하는 시가라는 것이 존재했지만, 신탁에는 사실상 시가가 존재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결국 투자자 입장에서 본인이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는 구조란 시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상장주식 편입 신탁의 경우 당국 차원에서 정한 기준은 없다”며 “불완전판매 등 판매사에 책임 소재가 있어 보이는 경우 사례별로 검토하고 사후 처리하는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비상장주식에 편입한 신탁 상품은 여타 다른 금융상품처럼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일부 금융사들은 고액자산가들을 상대로 꾸준히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비상장주식의 시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그럼에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평가 기준을 만드는 등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