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 등 노조가 파업에 나서며 국민적 우려가 커지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파업이 아닌 노사 협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조를 알리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근로자의 날인 지난 5월 1일엔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한성여객운수 하계영업소를 직접 찾았다. 한성여객운수 지부가 속한 서울시버스노조는 지난 3월 29일 대안적 분쟁해결(ADR)을 활용한 사전조정으로 파업 없이 임단협을 타결했다. ADR은 협상·화해·조정·중재 등 법원심리·소송 이외 대안으로 갈등 당사자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김 위원장은 "올바른 노조 역할을 알려야 한다"며 "중노위원장 최초로 '올해의 근로자상' 1호를 시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상자는 서울시버스 조합원인 버스기사다.
김 위원장은 중노위가 노사 간 균형이 아닌 '친노동'에 치중한다는 인식을 바꾸는 데도 힘쓰고 있다. 그 일환으로 '중앙노동위원회'인 기관 명칭을 '공정노동위원회'로 개정하고자 중노위 위원들 의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중노위 위원은 노조가 추천한 근로자위원 48명과 경영계가 추천한 사용자위원 50명, 고용노동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한 공익위원 67명 등 모두 174명이다.
김 위원장은 "공정은 시대정신"이라며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모두 노동 분쟁 해결 분야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11월 말 중노위 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했다.
"집단 노동분쟁뿐 아니라 부당해고 등 개별 노동분쟁도 ADR로 화해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4월 기준 중노위가 처리한 전체 사건 4841건 중 32.3%(1563건)가 ADR로 종결됐다. 역대 최고치다. 한국 ADR 프로그램인 화해권고회의를 전국 13개 지방노동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다.
취임 후 지난해 12월 철도노조를 시작으로 올해 3월 버스노조 임단협 타결을 끌어내면서 두 차례 파업을 막았다. 보통 노사가 임단협을 진행하다 갈등이 생기면 조정신청을 하면서 중노위를 찾는다. 이번에는 중노위가 노사에서 조정신청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나서서 임단협을 타결하도록 이끌었다."
-집단보다 개별 분쟁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등 개별 분쟁이 늘고 있다. 노동자 권리의식 상승, MZ세대 노동시장 진출 등이 배경이다. 주로 해고·징계 등 노사 갈등을 넘어 노노(勞勞)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갈등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노동위 전문성 강화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복잡한 사건은 심도 있게 다루고 비교적 단순한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고용상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 관한 적절한 조치 의무 위반과 불리한 처우에 대한 노동위 시정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1년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제도 자체가 노동위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도록 축소해 놨다. 노동위에 시정신청 자체가 적었다. 지난해 5월 제도 도입 이후 지난 6월 14일까지 1년 넘게 고용상 성차별·직장 내 성희롱 시정 신청 접수 건수는 총 50건에 그친다.
일반인이 느끼는 성차별 문제는 노동위가 아닌 국가인권위원회 영역이다. 그런데 현재 인권위는 이 문제를 다룰 역량이 되지 않는다. 문제 해결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비단 성차별 문제뿐 아니라 컨트롤타워가 없고 제도 설계에 문제가 있는 영역들이 있다. 이런 문제를 방치하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제도 설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최근 중노위 법률자문단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 5월 변호사 15명과 노동법 교수 6명 등 법률자문위원 21명을 신규로 위촉해 22명에서 43명으로 늘렸다. 특히 대전고등법원장을 지낸 조해현 변호사 등 판사 출신 법률자문위원이 1명에서 12명으로 확충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위에서 접수하는 사건 구조가 복잡해지고 있다. 복잡해진 만큼 노동위 판정이 탄탄하지 않으면 결국 법원에서 패소한다. 실제로 노동위 재심 판정이 법원에서 유지되는 비율인 재심유지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법리가 확립되지 못하고 판례도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법률자문이 필요하다. 판정에 대한 공신력을 높이고 패소율을 낮추기 위해 조사관과 위원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 노동법원 설치법안을 냈다.
"노동법원 설치 논의는 과거부터 꾸준히 있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초기 사법부가 강력하게 요구했다. 사법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문제는 법원이 노동 사건을 다룰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노위는 노동 사건을 처리할 때 조사관이 붙어서 면밀히 살피고 심문회의 등을 길게 진행한다. 법원은 조사 인력도 없고 갈등 구조가 복잡한 노동 사건을 처리하기 어렵다. 법조계에서도 노동위가 하는 게 순기능이 크다고 판단한다.
노동계도 노동법원 설치를 지지하지 않는다. 2021년 기준 노동위 사건 처리 기간은 평균 57일로 1심 종결에만 376일 걸리는 법원보다 6배 이상 빠르다."
"노조 바깥에 있는 86% 노동자를 위해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 이들이 하소연할 곳도 부족하다. 저성장 시대에 일자리를 나누고 불평등 해소를 위해 힘써야 한다.
결국 노동 개혁을 통해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자 혜택을 고르게 나눠 가지자는 것이다."
-학계에 있을 때부터 '노조 바깥 근로자' 보호를 강조해 왔다.
"최근 노동자 간 갈등 중 원청과 하청 간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이 크다. 이른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 갈등이다. 우리 노동위는 조정·화해·판정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중 구조로 인한 노동시장 갈등이 심각하다. 노조는 주로 대기업·공기업에 있고, 기업 규모가 작아질수록 노조가 적다. 양극화 해소가 시급하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는 노동법과 단체협약·취업규칙 등 삼중으로 보호를 받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노동자는 노동법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중노위에서 접수하는 사건 대부분이 바로 노조 밖 근로자 사건이다."
-앞으로 노동위원회 계획과 추진 과제는.
"노동위는 노동 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일본·영국·독일·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노동 개혁 과정에서 노동 분쟁 개혁을 수반했다. 공정한 노동 분쟁 해결과 사건 처리 혁신을 위해 위원과 조사관 전문성 강화를 강화해야 한다. 인프라 조성이 필수다.
국민 인지도도 높여야 한다. 노동위 장벽을 낮추기 위해 e-노동위원회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위 모든 사건을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게 된다. 판정·판례 등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국민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노동 분쟁 해결 시스템의 선진화를 이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