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변호사 시절, 경력도 많고 실력이 출중한 상대방 측 변호사가 쓴 서면이 너무 형편 없는 경우가 많아 의문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한 번에 너무 많은 사건을 수임해 개별 사건에 온전히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 번에 30~40건에서 60~70건까지 맡고 있는 경우도 봤다." (우미연 우리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권경애 변호사의 '학폭 유족 패소' 사건을 계기로 비슷한 피해 사례가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법조시장 경쟁 과열로 인한 과다 수임이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됐다.
불성실로 인한 피해 구제 제한적...변협 개입도 한계
20일 변협에 따르면 2020~2022년 동안 성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결정한 건수는 총 32건이다. 이 중 5년 간 변호사 자격을 잃는 ‘제명’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직 이하 처분을 받았다.
이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법조계는 변호사 선임도 개인 간 계약인 만큼 변협이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변호사는 채권자인 의뢰인에 대한 ‘채무자’로서의 계약상 의무가 생기는데 계약 의무 이상의 강제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변협 관계자는 “권경애 사건을 계기로 징계가 무거워지는 기류가 보이나 사적 관계인 이상 어느 단체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일종의 ‘위임 계약’인 변호사와 의뢰인 간 관계에 따라 채무불이행에 대한 적극적 손해와 위자료를 따지게 된다. 통상적으로 위자료는 불법행위에 따라 500만원~3000만원 수준에서 결정된다. 권 변호사 피해 유족을 대리해 손해배상을 제기한 양승철 변호사는 "적극적 손해를 인정할 수 있는지는 사건에 따라 다르다"며 "재판부가 소송 끝까지 수행했더라도 승소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고 판단하면 적극적 손해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 과열로 인한 과다 수임이 원인...미국처럼 준비서면 공개해야
법조계는 최근 변호사들의 불성실 의무로 피해 사례가 다수 보고되는 원인을 변호사 수 증가와 그에 따른 수임 경쟁으로 보고 있다. 올해 기준 서울지방변호사회에는 2만5000여 명의 변호사가 등록돼 있다. 2013년 1만408명 대비 약 2배 늘어난 수치다. 늘어난 변호사 수만큼 수임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 번에 수임료가 값싼 여러 사건을 맡게 되는 경우가 발생, 상대적으로 사건을 소홀히 다루는 일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우미연 변호사는 “협업해서 사건을 맡는 변호사 업무 특성상 수임하는 사건 수를 제한하기도 힘들다”며 "의뢰인이 수시로 변호사와 소통하면서 재판 진행 상황을 꼼꼼히 챙기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30년 경력의 A변호사도 “나의 사건 검색 등을 통해 직접 사건의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며 “수시로 진행 상황을 질의하고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뢰인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변호사와 사건에 대한 정보가 더 공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법조인 대관 등을 통해 징계기록 등 단순 정보만 열람할 수 있지만 미국은 소송준비 서면과 의견서까지 열람할 수 있다. A변호사는 “우리나라는 판결문 공개 비율이 굉장히 낮은데 판결문만 검색해도 담당 변호사가 어떤 사건들을 수행했는지 알 수 있다”며 “변호사 광고 내용을 검증할 수 있도록 변협도 정보 공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