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빈자리를 채워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미국 정치권에서 나왔다. 구두 경고로 일관했던 중국이 마이크론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에 나서자 바이든 행정부의 추가 대응과 함께 동맹국 결집을 요구하는 강경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빈자리 채우기 차단해야"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더욱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그는 “미국은 기업이나 동맹에 대항한 경제적 강압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 역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갤러거 위원장은 또 “상무부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를 블랙리스트(entity list)에 즉시 추가하고 기술 수준과 상관없이 미국 기술이 이 산업에서 활동하는 CXMT와 YMTC, 다른 중국 기업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CXMT는 중국 D램 시장을 선도하는 중국 현지 반도체 회사다. 마이크론의 중국 시장 배제로 중국 반도체 기업 중 CXMT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애널리스트들은 CXMT 반도체는 업계 선두인 마이크론, 삼성, SK하이닉스보다 2~3세대 뒤처져 있다고 본다.
갤러거 위원장은 이번 발언을 통해 마이크론 제재로 한국 등 외국 기업이 반사 이익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 산업계는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를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 등으로 쉽게 교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들 기업과 그 외 비(非)중국계 기업은 10월에 부과된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에서 면제를 받았다”면서도 면제 만료 혹은 취소는 미국 정부 손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 태도에 따라서 미국 정부 측 조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백악관 역시 중국 당국 결정에 즉각 반발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최근 결정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상무부가 마이크론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직접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마이크론 제재와 관련해 재계는 물론 동맹국들과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美 동맹국 결집 강화하나···"전기차 부문으로 확전할 수도"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벼랑 끝으로 몰기 위해 동맹국 결집을 더 강화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정부 관계자와 반도체 업계 임원들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니콘 등 자국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에 대해 첨단 반도체 외에도 45나노미터(1㎚=10억분의 1m) 등 범용 반도체에 대해서도 수출 통제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7월부터 반도체 제조 장비 23종에 대해 대중국 수출을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측 보복 조치 역시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 이안 총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 부교수는 "마이크론과 같은 미국 기업을 제한하는 접근 방식은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면서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류용욱 싱가포르 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국제관계 교수는 미·중 패권 전쟁이 반도체에서 전기차 부문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전기차는 중국 기업이 미국 제품을 쉽게 대체할 수 있고 비야디 등 자국 기업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분야”라며 테슬라가 다음 타깃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이번 주 워싱턴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