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韓日, '삼일운동 정신'으로 미래지향적 관계 열자

2023-05-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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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교수]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잘 맞는 예도 흔치 않을 것이다. 최근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최고의 비호감 국가 타이틀을 중국에 내주기는 했지만 일본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경제협력과 북한 핵문제 대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과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한·일 관계 역사는 백제 등에서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것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현재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 역사다. 주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는 굴욕감, 당시 일제에 의해 행해진 각종 억압과 수탈, 그리고 철저한 반성 없이 교과서 왜곡 등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직도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모두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들과 불편한 관계인 것은 아니다.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들 중 다수가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과 필리핀, 독일과 브라질 관계도 우리와 일본 관계와는 다르다. 그것은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과거사를 사죄하면서 무릎을 꿇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일본의 태도 때문이라 할 수 있지만 서로를 왜놈과 조센징으로 부르면서 무시하던 뿌리 깊은 혐오 감정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방한을 둘러싸고 여야 간 공방이 뜨거웠던 것도, 국민들 사이에 한·일 관계 복원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 것도 나름 이유는 있는 셈이다. 일본을 싫어할 만한 이유도 있고, 미래를 위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필요성도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웃 나라 간에 반목이 장기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는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을 받았고 큰 피해를 입었던 프랑스도 과거의 앙금을 접고 확고한 우호관계를 쌓음으로써 유럽 연합의 중심축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일 관계 정상화는 글로벌 시대에 대한민국의 발전, 나아가 동아시아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와 일본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 일본의 진지한 반성과 사과,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한 해결 없이는 관계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국익을 위해 이런 문제들은 덮어 두어야 할까?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이 문제는 정부의 결정만으로 풀기 어려운 것이며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였고,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으로 평가되는 삼일운동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19년 삼일운동은 1905년 을사늑약에서 14년 후, 1910년 한일합방에서 9년 후에 일어났다. 외견상의 계기는 고종의 승하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계획하고 온 겨레가 호응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역사적 독립운동이었다. 이러한 삼일운동의 의미와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당시 만주를 거의 점령하고 중국을 압도하는 가운데 전쟁을 치르고 있던 일본의 기세에 억눌려 한반도 독립의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면서 체념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삼일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이 독립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함으로써 한반도 내에서는 활발한 민족계몽을 통해 독립의 기초를 형성하는 움직임의 원천이 되었고, 한반도 밖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성의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무장독립투쟁의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삼일운동은 비폭력⋅무저항의 평화적 독립운동으로서 세계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연합국이 승전한 이후에 한반도를 일본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만일 평화적 독립운동이 아니라 무장봉기로 일어나 국내에 있던 일본군과 싸우고 일본인들을 살상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제국주의가 아직도 지배적이던 시절의 세계 여론은 삼일운동을 식민지에서 발생한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며, 일본은 본토 병력을 동원하여 엄청난 보복을 가하려 했을 것이다. 결국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셋째, 삼일운동은 무력을 앞세운 일제에 대해 힘으로는 맞설 수 없었지만 독립이 정당한 요구라는 것, 정당한 요구를 함에 있어서 힘에 억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광복 이후에 4·19혁명 등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국민들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주권의식과 민주의식의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삼일운동의 정신은 힘의 논리보다도 정의의 논리가 우월함을 보여준다. 당시 일본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우리를 압도했지만 정의롭지 못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평화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비판함으로써 세계인을 우리 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목하 한·일 관계를 돌아보자. 우리만의 시각이 아니라 세계인의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바라보고,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했을 때 세계인을 우려 편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수많은 나라들과 다른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일본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는 식의 고집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그럴 때 세계인이 우리 태도에 공감을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충분한 반성과 사죄가 없었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한·일 관계의 앙금을 없애는 데 중요함을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공감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군으로서 독일에 맞서 싸웠지만 현재 유럽연합에서는 영국이 탈퇴한 가운데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의 중심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우리와 일본의 관계 또한 달라질 수 있으며 탄력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일본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내려놓고 국익을 위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는 것이 한·일 관계의 올바른 미래인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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