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 성과와 과제⑮] '적과 동지'…외교 노선으로 확대된 이분법 기조

2023-05-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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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시설(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을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 "역대 한국 정부 중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대한 민족적 독립의식이 가장 결여됐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방미가 이를 입증했다." "이 문제(대만)에 대해 누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월권일 뿐이며, 그 어떤 간섭도 자기 발등을 찍는 것이 될 것이다."
 
최근 환구시보를 비롯한 중국 관영 매체들이 연일 윤석열 대통령에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해당 매체들의 경우, 평소에도 공격적 발언을 퍼붓기로 유명한 강성 매체들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최근 쏟아낸 발언들은 수위가 제법 높다. 외교적 수사로 보기 어려운 원색적 표현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공식 항의 서한을 보내 자제를 요청했음에도 비난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원인은 바로 대만 문제, 곧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미국 방문을 앞두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며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물론 중국 관영 언론이 반발했다고 해서 대통령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 중국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에서 각종 군사 행위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타국의 역린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현재까지 내정 측면에서 ‘적 아니면 동지’라는 식의 이분법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발생한 일련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성향이 외교 정책으로 확대하기 시작한 모습이다. 집권 1년 차에 유지했던 ‘전략적 모호성’은 옅어진 반면 이분법적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대만 문제뿐이 아니다.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들먹이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언급이라든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과 같은 발언 등도 윤 대통령의 외교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 대한 항의와 함께 대사를 초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거듭 말하지만 그러한 소란이 발생했다고 해서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꼭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해당 발언들이 해당국들과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만 낳았다는 것이다.
 
동지?
반면 윤석열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밀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중 일본의 경우, 지난 2달간 2번이나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이달 일본에서 있을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도 회담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말 그대로 ‘동지애’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동지’들로부터 받은 것보다 준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한국 산업계 최대 현안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에 대해 이렇다 할 실질적 성과를 끌어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국의 핵 개발 및 보유 여지를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한 모습이다.
 
몬터레이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의 핵 전문가 제프리 루이스 교수는 ‘워싱턴선언’을 가리켜 “순전히 상징적”이라며 “어떠한 군사적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한 외신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자신의 재선을 위해 한국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가진 2번의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못했다. 물론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의 성과도 있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중요 현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지금까지의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동지’가 맞는지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외교 정책의 스펙트럼은 ‘적 아니면 동지’ 식의 이분법적 입장으로 나누어진다기보다는 다양한 입장이 공존할 수 있다.

대만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국의 대만해협 긴장 고조 행위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중국과의 탈동조화(디커플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조차도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태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과 같은 우방국에 우리의 정당한 이익과 권리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동맹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 과거 우리를 도와준 부분에 있어서는 마땅히 감사하고 고마움을 표현해야 하지만, 동시에 갈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치열하게 협상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노선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외교 정책상 이분법적 행보가 강화할수록 국익과는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타국의 역린과도 같은 부분을 건드리면 그에 따른 피해는 복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에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다만 영원한 국가 이익이 있을 뿐이다.” 국제 관계에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말이지만 이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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