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가 은행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예금은 더이상 안정적인 자금조달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3일 오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56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거버너 세미나'에 참석해 해당 이슈를 주목해야 한다고 밝힌 뒤 "규제나 감독체계에 있어 긴급 자금지원이나 예금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는 이 총재 외에도 아사카와 마사츠구 ADB 총재와 인도네시아·인도 중앙은행 총재 등이 참여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 디지털은행이 잘 발달해 있어 빠른 속도의 예금 인출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저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규제 틀을 어떻게 맞출 것이냐 하는 것이고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현재 직면해 있는 한국 등 은행권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글로벌 역풍과 지정학적 분절화, 강달러 등 외환압박과 자본유출 리스크가 추가 긴축 여부에 따라 가능성이 있다고 꼽았다. 그는 다만 "선진국의 통화긴축 정책이 거의 마무리단계인 만큼 그 영향은 작년보다 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한 내일 새벽 발표될 미국 FOMC 일정을 언급하며 "미국이 지난해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때와 다르나 고금리 기조가 오래 갈수도 있으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관련해 중요한 이슈로는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꼽기도 했다. 그는 "여러 리스크 우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 종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경제위기 관련 제언에 대해선 "천편일률적인 권고를 드리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만 보더라도 처해진 환경이 천차만별이고 수출국 또는 수입국인지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대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정책으로 귀결하긴 어렵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은 통화 및 재정정책에 크게 의존해 경제를 개혁했다"면서 "반면 저희도 일시적으로 통화·재정을 이용할 수 있겠지만 성장률을 기대해선 안된다. 선진국의 사례에서의 구조적 경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