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의 시선] 워싱턴 선언의 허와 실…그것이 알고 싶다

2023-04-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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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 만찬에서 손 맞잡은 한·미 정상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23.04.27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 만찬의 하이라이트는 윤석열 대통령의 노래였다. 전통적으로 초청받은 외국 지도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건배사를 하거나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히 답할 뿐 노래를 하라는 주문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돈 맥클레인의 대표곡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자 윤 대통령은 영어로 한 소절 불렀다. 하루 종일 공식행사에서 영어 한마디 안 하던 대통령이었다. 80대 노구의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당신이 노래를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며 맥클래인의 사인이 들어간 기타를 선물로 주었다. 만찬장 분위기를 띄운 깜짝 쇼 같았지만 모두 사전에 조율된 것이었다.
이러한 화기애애함을 뒤로하고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서 모든 국민이 애를 태우며 기다린 것은 북한 핵도발에 대한 한·미의 공동 대응 전략이었다. 메이저 언론의 기사 중에서도 뉴욕타임스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5명의 대통령을 맡아 취재했다는 백악관 수석특파원 피터 베이커 기자와 38년 경력으로 백악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담당하는 데이비드 생어 기자의 공동 분석기사가 공동성명의 핵심을 찔렀다.
 
·미 우호 과시한 국빈 방문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 기사는 제목을 로즈가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 발언 중 “북이 핵 공격을 하면 평양의 정권은 끝장날 것”이라고 말한 데서 뽑았다. 그렇지만 이 발언은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라고 위협했던 말폭탄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80도 회전해서 김정은의 편지를 “아름다운 편지”라며 “사랑에 빠졌다”고 언급하며 김정은과 판문점에서 현란한 깜짝 쇼를 했지만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한 뒤로 트럼프는 김정은 리얼리티 쇼가 차기 선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김정은을 더 불러내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에 북한 핵무기를 현실로 은연중에 인정하고 북한과 30년 동안 대결하며 마련한 외교적 협상안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두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핵우산(확장 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고 핵우산 문서화는 전례를 찾기 힘든 특별 조치라는 설명이 따랐다.
한·미는 나토 핵공유 협의체인 핵기획그룹(NPG)과 비슷한 핵협의그룹(NCG)을 만들어 북한에 보복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한국과 협의하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협정은 핵무기를 발사할 전단적 권한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음도 분명히 했다. 바이든은 핵잠수함의 한국 방문도 약속했지만 이것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철수한 전술핵 재배치를 하지 않는 데 대한 보상 성격이다.
로즈가든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이 이처럼 강했던 적은 없었다는 공통의 인식에 따라 워싱턴 선언은 핵 확장 억제(핵우산) 전략을 전례 없이 확대하고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북한의 핵 공격 시 두 나라는 즉각적인 쌍방 대통령 협의를 통해 신속하게 압도적·결정적으로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한 동맹의 무력을 총동원해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부연 설명을 윤 대통령에게 넘기지 말고 바이든 대통령이 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두 기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수년 동안 재래식 무기의 정밀성과 폭발력을 개선해서 한 시간 안에 세계에 있는 어떤 목표물도 때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춰 인류 멸망으로 몰고 갈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는 버락 오바마 시대의 방위전략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은 “새 선언의 어떤 표현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의 중심적 위치에 새로운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한·미 방위조약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이번 정상회담까지 미국에 들인 공을 보더라도 워싱턴 선언은 섭섭한 대목이 적지 않다. 한국은 미국의 오랜 희망대로 일본과 관계를 개선했다. 한국은 미국에 포탄 50만발을 대여하는 형식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간접 제공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도청한 내용이 유출됐는데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악의가 없었다”고 감싸기에 바빴다. 우방이지만 도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했어야 했다.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가지 말라’며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과 중·러가 대립하는 이슈에서 미국 줄에 확실하게 선 것이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수출국임에도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압박에 참여했다. 대중 수출액은 2위 미국, 3위 일본을 합한 것보다 많다. 특히 중국에서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빈자리를 메우지 않도록 해 달라는 요청도 한국 기업들로서는 큰 부담이다. 한국은 가치동맹의 큰 틀을 유지하더라도 미국에 할 말을 하고 경제 분야에서라도 받아낼 것은 받아내야 한다.
 
국민의 최대 관심사 핵 보유나 핵 공유 관철 못해

우리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전술핵 배치나 핵무기 제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나토식의 핵공유 시스템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나토식 핵공유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튀르키예 등 유럽 5개국 6개 기지에 전술핵폭탄 150여 개를 배치하고 나토 핵계획그룹(NPG)을 통해 정책을 조율한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떠받치는 미국이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기는 어렵다. 1991년에 전술핵을 빼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북의 핵위협이 날로 노골화하면서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항상 높게 나온다.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엔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한국은 NPG보다 약한 NCG를 받아들이면서 NPT를 준수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과 워싱턴 선언이 김정은을 현실적으로 더 압박하는 수단은 될 것 같지 않다. 미국과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 그동안 압박을 할 만큼 했지만 김정은은 계속 핵 개발 한길로 질주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직전인 18일에도 딸 김주애와 함께 국가우주개발국을 시철하고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 준비를 점검했다. 김정은이 작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에 김주애를 처음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후 주요 군 관련, 특히 핵무기 개발 행사 때마다 딸을 데리고 나온다.

핵 행사에 김주애 동반 ‘핵으로 후대 계승’ 메시지

국가정보원은 올 초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 석상에 딸 김주애를 대동한 것은 세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 주애가 후계자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김주애 외에 다른 자녀는 확인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후계로 삼을 아들은 감춰두고 김정은이나 김여정처럼 스위스 유학을 보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관측통도 있다. 모두 다 추정이다.
대량살상무기 행사에 딸을 데리고 나오는 김정은을 통해 비정상 국가의 면모를 다시 확인할 수 있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김주애로 이어지는 그림 속에 딸 바보의 진정한 속내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메일 뉴스레터 <피렌체의 식탁>에서 “자식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핵실험을 계속해야 하고, ICBM 또는 탄도미사일을 계속 발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핵무기에 의지해 대대손손 공화국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실현될지 의문이지만 핵을 잘못 건드리면 김일성 왕조는 4세대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그날로 끝이라는 사실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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