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4박 5일의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2018년 8월 주한 중국대사관 초청으로 한국 언론인과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로 구성된 방중단의 일원으로 베이징·항저우·상하이·선전을 일주일간 둘러 본 이후 거의 5년 만의 중국 방문이었다. 이번에는 베이징 소재 한국 광고 회사와 베이징 주중한국문화원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 내외의 초청으로 중국 땅을 밟았다. 일주일 전만 해도 최악의 황사로 뿌옇게 물들었던 베이징의 하늘은 어느새 맑고 푸른 하늘로 변하고 공기도 따뜻해 봄나들이 관광하기에 제격이었다. 이번 달부터 코로나19로 막혔던 단체 관광객들의 중국행 하늘길이 열리기 시작했지만 중국을 오가는 대한항공의 좌석은 여기저기 빈 곳이 많았다. 엄격하고 까다롭다고 소문난 중국 입국 절차는 미리 각오했지만 이중·삼중으로 설치된 베이징 수도공항 보안검색대를 빠져 나오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늦은 저녁에 아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호남식 중국 요리와 선물용 견과류 과자를 모바일 웹으로 주문했더니 15분정도 있으니 물건이 도착했다.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선생 유통매장은 전국에서 생산된 신선한 농수산 식품을 패키징해 웹 주문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배달한다. 호기심에 매장을 들렀더니 손님보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매장 직원이 더 많은 듯했다. 장바구니는 매장 내 컨베이어 레일로 옮겨지고 배달원은 이를 픽업해 고객의 자택으로 신속히 달린다. 놀라운 것은 지역 내 고객 특징과 다양한 수요를 데이터화해 매장마다 또는 요일에 따라 파는 물건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택시를 잡을 때도 우리나라 카카오택시와 유사한 앱인 DiDi 앱으로 해결된다. 이동 동선이 실시간으로 표기되고 선택할 수 있는 차량 종류와 가격도 다양하다. 택시 운전자에 대한 평점도 데이터로 축적되기 때문에 안전이나 친절함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자율주행 무인택시 서비스도 베이징 교외에서 상용화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중국은 AI와 빅데이터 슈퍼 파워이다.
거의 3년에 걸친 코로나 통제에 지친 중국인들은 여행과 쇼핑 외식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베이징 시내에서 2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북으로 달리니 만리장성을 품고 있는 관광명소인 고북수진에 도착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중국 곳곳에서 도착한 관광객들로 주변의 크고 작은 많은 호텔은 객실이 거의 찬 듯했다. 어둠이 깔리고 관광단지 내 수로변과 골목길의 음식점과 카페는 화려한 조명 아래 손님들로 가득 찼다. 관광단지 중앙의 광장에선 중국 전통의 경극 공연에 이어 수백개의 드론이 밤하늘에 신기한 형상을 만들어내며 관람객들의 감탄과 환호를 자아냈다. 중국이 4차산업혁명 핵심산업의 하나인 드론 강국임을 실감케 한다. 드론 굴기를 앞세운 중국은 세계 최초로 유인 드론 택시까지 개발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왕징에서 차량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베이징 최대 쇼핑단지 싼리툰은 화창한 봄날 주말 쇼핑과 외식을 즐기려는 인파로 가득 찼다. 세계적인 명품 가방과 의류 화장품의 종합 전시장 같은 곳으로 한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해외 브랜드 매장이 가득하다. 트렌디한 부티크 매장은 가는 곳마다 쇼핑객들로 북적였다. 또 이름난 맛집들은 대기 손님들로 줄이 길게 이어져 우리 가족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방역 통제로 아들 내외는 답답한 집안에서 따분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기껏해야 인근 공원을 가끔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말 '제로 코로나'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중국 전역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중국은 2~3일에 한번 시행해왔던 PCR(핵산) 검사를 폐지하는 등 '위드 코로나'로 갑자기 유턴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자신의 최대 치적이라고 자랑하던 '제로 코로나'를 포기한 것은 자신의 3연임을 앞둔 민심 달래기이자 경제회복의 시동을 걸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해 성장률이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치는 3.0% 성장에 그친 뒤 올해는 '5.0%" 안팎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은 내수확대와 외자유치에 총력을 쏟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맞춰 중국의 소비가 크게 증가하면서 1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5% 성장했다. 예상(4.0%)을 뛰어넘는 수치이다. 수출도 3월 들어 14.8% 증가해 시장예상치(-1.3%)를 큰 폭으로 상회했다. 중국 경제가 마침내 정상궤도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경제의 회복은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고물가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세계 경제 회복에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IMF에 따르면 올해 세계 경제 성장에 대한 중국의 기여율이 3분의 1에 달할 전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은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의 구세주였다. 올해 들어 중국 정부는 지난해까지 핵심 규제 대상이던 빅테크, 부동산에 대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각종 정책 지원 속에 '위드 코로나'가 안착한다면 올해 중국의 5% 성장률 회복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비록 올해 중국의 경제 성장이 대외 교역보다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일지라도 우리 경제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양국 관계가 여러가지 이유로 냉각되었지만 경제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이젠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창업 만인창신'(大衆創業 萬人創新)
5년 전 방문 당시 중국은 경제성장률 6%대 후반 수준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도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었다. 또 개혁·개방 노선이 채택된 지 40년이 지나면서 그동안의 양적 팽창에 만족하지 않고 질적 성장을 위해 소매를 걷고 있었다. 특히 '대중창업 만인창신'(大衆創業 萬人創新)이란 기치를 내걸고 창업과 혁신에 힘을 쏟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필자는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촌 과학기술단지에 자리한 바이트댄스 본사를 방문했다. 본사 건물은 비행기 격납고를 여러 층의 사무실로 개조해 만들었는데 방문 당시 수많은 입사 지원자들이 줄지어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단은 이곳 임원들로부터 이미 중국 내 청소년층으로부터 인기 몰이를 시작한 인공지능(AI) 기반의 동영상 앱 '틱톡'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과연 이 비상장 슈퍼유니콘 '스타트업'이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게 사실이다.
'틱톡'은 지금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성인들이 가장 오랜 시간 사용하는 앱이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전체 인구 3억4000만명 중 1억5000만명이 틱톡 이용자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으로의 사용자 정보유출을 이유로 '틱톡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확산 중이다. 5년 전 저장성 성도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할 당시 어렴풋이 들었던 신선식품 유통매장에 대한 설명도 그냥 무심코 흘려 보냈는데 지금은 중국 어디를 가나 고품질의 신선식품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배송하는 시스템은 이제 깊숙이 뿌리 내렸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기업뿐 아니라 나라 경제를 살린다. 중국인들의 식품 구매 패턴을 바꾸고 유통구조를 혁신한 알리바바의 창의적인 발상이 없었다면 지금 중국의 농촌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낙후되어 있을 것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
중국은 우리에게 '가깝지만 먼 나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서울로 귀국하기 전날 밤 필자는 아들과 중국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들의 고충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까지도 대규모 흑자를 내던 한국이 왜 지금은 대중무역수지 적자를 고민하고 있나? 왜 많은 우리 기업들이 거대한 기회의 땅인 중국에서 사업을 접고 줄줄이 철수를 하고 있는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인의 반한감정과 한국 제품 불매운동 때문인가? 중국의 경기가 과거보다 좋지 않아서? 결론은 무엇보다도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가 원인이다.
중국의 기술수준과 제조역량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우리나라는 수출할 물건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 중국은 우리에게 점점 더 부가가치가 매우 높거나 프리미엄한 이미지의 상품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웬만한 중국 상품은 우리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은 비슷하거나 높아졌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그리고 화장품과 자동차 등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배터리도 생산을 하면 할수록 중국재 중간재를 더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다. 반도체는 그래도 중국에 비해 아직 경쟁력이 있지만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세계적인 명품그룹 '루이비통 모에헤네시'의 고가 브랜드 상품과 유럽의 고급 자동차가 중국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경쟁력과 비교우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출구 전략으로 우리나라 수출 시장의 다변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국 기업은 무섭게 성장하며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변했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 부진이 고착화 된다면 우리 경제는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중국의 변화된 수요를 잘 파악하고 과거 대한민국 특유의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면 중국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다가올 수 있다. 중국 시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고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높이가 높아진 중국인 소비층을 공략할 수 있는 초격차의 혁신적 제품이 줄줄이 나올 수 있도록 범국가 차원의 장기적 전략을 논의할 시점이다.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외교적 수사를 자제하고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의 경협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거대한 중국의 초라한 주변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