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이 총재가 취임한 작년 4월 1.5%였던 기준금리는 고강도 긴축으로 1년 만에 2%포인트 뛰었고 이로 인해 6%대를 웃돌던 물가 상승률(전년 대비)은 지난달 기준 4.2%로 확연한 둔화세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채권시장 경색에 따른 안정 조치 등 대내외 금융 불안 상황을 대체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3년 중 1년 임기를 채운 이 총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전날 한은 노동조합이 이 총재 취임 1년을 맞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응답자 1002명)에서 80% 이상이 지난 1년간 한은의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 노력이 시의적절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이 총재의 학식과 전문성, 국제교섭력을 바탕으로 한은 위상이 높아졌다고 평가한 직원들도 상당수였다.
이 총재는 한은 역사상 최단기간에 최대폭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이끈 총재로 꼽힌다. 특히 한국에선 유례가 없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처음으로 단행한 총재이기도 하다. 이 총재 진두지휘하에 한은의 통화긴축 움직임은 신속했고 그 결과 기준금리는 14년여 만에 3.5%에 도달했다. 최근 들어 물가 상승률이 뚜렷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총재는 "안심하기엔 이르다"며 '매파' 목소리를 내면서 물가 안정을 위한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코노미스트,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 등을 거친 '외부 출신'인 이 총재는 한은 내부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한은 구성원들이 격의 없이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주간 현안포럼'을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타운홀 미팅 등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마련했다. 한은은 대한상공회의소 등 외부 기관과 함께 대외 행보도 부쩍 늘렸다. 이 총재는 시장과 소통하는 데도 방점을 찍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종 금리 수준에 대한 금통위원 의견을 공개하는 '한국식 점도표'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 예다.
한은의 통화정책과 정부 재정정책을 둘러싼 엇박자 논란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 총재는 지난해 "한은이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고 언급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사문화된 '열석발언권'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때만 되면 등장한다. 금융당국도 '상생금융'을 명분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서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높은 기준금리에도 여수신 등 시장금리가 하락하는 '금리 엇박자'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통화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의 통화정책 개입 최소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