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기술과 반도체·우주·인공지능(AI)·바이오 같은 과학·공학 분야 기술인재 부족이 국가 차원 문제로 대두됐다. 기술인재 육성과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정책적인 비(非)전공자 양성 사업, 해외 인재 영입을 위한 법제 정비가 추진됐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은 즉각적이면서 유효한 해법으로 남성과 함께 인구 구성 절반을 이루는 내국인 여성 인재 활용 시나리오를 내세운다. 아주경제는 17일 문애리 WISET 이사장과 시급한 국가 미래 인재 확보 전략과 이를 위한 재단 운영 방향을 주제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내용.
-WISET은 어떤 기관인가.
-재단 이사장직에 지원한 동기는.
“제가 (미국 유학을 가)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게 1989년이다. 남자 대학 동기는 오자마자 대학에 자리를 잡는데 저를 비롯한 여성 동기들은 쉽지 않았다. 저는 1995년 덕성여대 약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 사이 많은 대학에 문을 두드리면서, 과학계에서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을 실감했다. 처음엔 강의와 연구에 최선을 다 해야 후배 여성 과학자들이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과학기술계 발전과 여권 신장을 위해 힘쓰시는 나도선 교수님 활동에 감명을 받고 여러 대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2020년대 초 우연히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자리를 맡게 되면서 학교를 벗어나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인재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됐다. 우리나라 인구 감소 국면에 핵심 인력 확보가 가장 필요한 일인데 활동하지 못하는 유능한 여성 인재들이 주위에 많은 상황이었다. 본부장 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뒤 WISET 이사장 공모가 나왔는데, 젊을 때부터 여성 과학자로 일해 왔고 국가 과학기술 정책, 관리도 경험해 본 제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올해 기관 최대 역점 사업은.
“우선 11월 23일에 WISET과 여러 여성 과학기술인 단체가 통합 연차대회를 여는데 지금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다. 올해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가 30주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KOFWST)가 20주년, WISET이 10주년을 맞은 해다. 그간 여성 과학기술인 키워드가 들어가는 단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행사를 해 사람들의 관심이 좀 분산돼 이번에 통합대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WISET, KWSE, KOFWST,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WiTeck)가 함께 주관한다. 여성 과학기술인 가치창출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올해를 여성 과학기술인 발전 원년으로 삼을 예정이다.”
-중요도가 높은 다른 사업도 소개한다면.
“둘째는 정부 사업 마스터플랜이 되는 현행 ‘4차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지원 기본계획’ 기한이 올해 끝나 2024년부터 5년간 적용되는 차기 기본계획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까지와 달리 5차 기본계획 수립은 WISET 정책연구센터가 주도하게 됐다. 여성 과학기술인 의견뿐 아니라 남성 과학기술인과 일반 대중까지 설득할 수 있는 계획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셋째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 잠재된 여성 과학기술인 역량을 100%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보편화하는 것이다. 전문성과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여러 사정으로 과학기술 분야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임신·출산·육아(와 관련한 경력 단절, 경력 복귀 장벽, 고용 불안)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파악해 개선하고 국가와 사회가 여성 인재를 100% 활용하도록 돕기 위해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개념이 자리잡도록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 사업 대상자인 여성 과학기술인에게 그간 어떤 도움이 얼마나 주어졌는지, 우리가 생각지 못했는데 도움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한 연구 현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 육성과 확보 전략 관점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보나.
“우리가 여성 과학기술인 경력의 ‘파이프라인’에 ‘누수’가 일어난다고 표현하는 현상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 과학·공학 분야 학사 전공자 취업률을 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6.5%포인트(p) 낮다. 석사 졸업 후 이 격차가 7.1%p,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은 10.6%p로 벌어진다. 고학력자일수록 남녀 취업률 격차가 커지고, 이는 진학 도중 여성 이탈률이 상승한다는 얘기다. 과학기술 분야 국립 연구기관도 당초 채용된 여성 비율은 30% 수준인데, 재직자 비율은 20%, 보직자 비율은 10%다. 채용은 나라에서 하라니까 하지만 근속하고 승진하는 단계로 갈수록 어떤 ‘유리천장’이 있기 때문에 그 비율이 유지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두 가지 이유를 본다. 여성 인재의 핵심 경력 개발 시기와 임신·출산·육아 시기가 겹치는 상황이 첫 번째이자 최대 요인이다. 두 번째 이유는 1993년 과학사학자 마거릿 로시터가 ‘마틸다 효과(matilda effect)’라고 명명한 현상인데, 과학자 집단에서 동료 남성 대비 여성의 성과를 평가 절하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어느 학계, 산업계, 연구계나 공동 연구 저자로 이름을 올린 동료 연구자 가운데 무조건 남성이 주도적 역할을 했고 여성이 보조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작용할 수 있고 이에 대해 경각심이 필요하다.”
-관련법이 제정된 20여년 전과 지금, 여성 과학기술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제가 구직 활동을 할 때는 20년보다 훨씬 더 이전이지만, 과거보다 지금 여성 인재의 사회 진출 여건이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노력한 덕분에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가 명시적으로 갖춰져 있고 자리잡아 가는 단계라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분위기 때문에’나 ‘눈치 보여서’ 휴직을 못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일이 없으려면 육아휴직 제도와 맞물리는 대체 인력이 공급돼야 한다. 전문성을 보유한 여성이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울 때 대체 인력이 없으면 남아 있는 부서장과 동료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WISET이 이미 호응이 크고 수요가 많은 사업으로 연구개발 분야 대체 인력 지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마침 얼마 전 우리 정부가 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국가가 대체 인력을 알아 보고 지원하겠다고 나서 줘 굉장히 반갑다.”
-’여성 지원’ 자체에 색안경을 낀 사람들에게 재단 사업이나 관련 정부 정책 목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면.
“이공계 대학 전공 신입생 성별 분포를 보면 자연계열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거의 비슷한데, 공학은 여학생이 전체 20% 수준으로 적은 편이다. 여학생들이 공대에 좀 덜 가는 것이다. 자연계에서는 남녀가 반반, 공학 계열에선 20% 수준의 여성 인재가 유입된다. 여성이 더 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고, 적어도 유입된 여성 인재가 해당 분야에서 경제·사회 활동하는 비율은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WISET은 여중생·여고생들에게 ‘공학은 여성에게 어려운 분야’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려고 한다. 공학 분야도 여성의 몫이 있다. 공학 분야에 관심이 없거나 구직 단계에 여학생에게 힘든 분야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관심과 재능이 있는 인재조차 ‘무슨 여자가 공대를 가냐’는 인식 때문에 자기 소질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학 분야는 점점 더 디지털 전환 흐름으로 AI를 비롯한 디지털 신기술의 영향력이 스며들고 있다. ‘공감’과 ‘감성’ 등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이 필요한 분야가 많은데, 이런 영역에 관심 있는 이들이 주저하지 않고 참여해 줬으면 한다.”
-정부가 국가 주력기술 초격차 전략을 발표하며 기술인재 육성을 강조했는데,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은 국가경쟁력과 어떻게 연결될까.
“당장 인재가 필요하다는 진단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그런데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전공자에게 기술 교육을 제공한다거나 외국인에게 취업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이런 것을 꼽는다. 여성 인재를 활용하는 방안에 더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전체 인구 비율로 남성과 여성이 반반이고, 통계상으로 자연계열 분야에 여성 인재가 많고, 공학 분야에서도 전문 지식을 쌓고 훈련을 받은 여성 인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적극 활용하지 않는 것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나라에서 이런 방향으로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또 한 가지는 (국가 인재 활용 전략 관점에서 해법을 찾기 위한) 육아 문제다. 육아는 공동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 좋겠다. 한국은 이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져 있다. 이 점을 방증하듯이 세계경제포럼(WEF) 연차대회인 다보스 포럼에서 매년 발표하는 ‘성격차지수(性隔差指數·Gender Gap Index)’ 2022년도 순위를 보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6개국 중 99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OECD 29개국 대상으로 조사하는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를 봐도 한국은 부동의 꼴찌다.”
-정부 출범 이래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고 있는데, 예산이 더 필요한 분야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할 때 조직에 대체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돼야 여성 인재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고용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 고용이 안정화하면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데이터도 있다. 대체 인력 활용 사업이 확대돼 많은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겪지 않고 단절된 상황에서 경력 궤도에 복귀하면 좋겠다. 우리는 여성 인력이 현장에서 분리된 시간을 만회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코딩, AI 등 교육을 운영하고 일자리 매칭도 하고 있다. 경력 복귀를 원하는 여성이 많지만 예산이 제한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인재는 소수에 그친다. 또 여학생에게 공학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하고 공학 분야 유입 인재를 늘리기 위해 여중생·여고생과 대학생·대학원생을 연결해 지원하는 ‘공학연구팀제’ 사업 대상을 초등학생까지 넓히고 싶은데, 이를 위한 예산 확대를 기대한다.”
-과기정통부를 넘어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 되길 바라는 의제가 있다면.
“지금도 산업통상자원부와 소규모 정책 사업으로 함께 일하는 부분이 있다. 고용노동부와는 여성 인재 일자리와 관련한 사업이 좀 더 확대되길 바란다. 여성 장관이 재임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도 이런 (여성 인재 일자리) 분야에 이해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와는 그간 일을 해 왔는데 작년에 종료됐다. 앞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여성 고용 촉진 정책 등을 과학기술 분야 전문 인재 확보 관점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사장 취임 후 구성한 ‘정책자문위원회’ 역할과 이사장 본인이 임기 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우리가 WISET의 활동에 몰두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는데, 정책자문위원회는 넓은 관점에서 재단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구성했다. 정진택 자문위원장(전 고려대 총장)을 비롯해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전 과총 회장), 노정혜 한국과학기술원 석좌교수(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경험 많은 남성과 여성 전문가, 신진 연구자들을 위원으로 두루 모셨고 지난 3월 2차 자문위를 개최했다. 앞으로 분기마다 자문위에 WISET 활동을 공유하면서 현장 실효성이 있는 정책과 제도를 도입하고, 여성 과학기술인 정책을 남녀 공동 의제로 삼아 남성과 함께 하는 정책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도모하겠다. 제 임기 내 목표는 우리나라 여성 과학기술인들에게 좀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어떤 복지나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남녀 함께 이에 대해 공감해 줬으면 좋겠고, 그런 움직임을 크게 일으켜 보고 싶다.”
◆문애리 WISET 이사장은
▷現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現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장
▷現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대외협력담당 부원장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본부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 기초기반전문위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대한약학회 회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덕성여자대학교 부총장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