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총장에게 징역 4년 6월을 선고하고 9억8680만원의 추징 명령을 내렸다.
검찰은 앞서 지난달 23일 결심공판에서 이 전 부총장에게 3년을 구형했다. 이례적으로 법원은 이보다 1년 6월을 더 늘린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최소 5년 이상을 구형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검찰이 이보다 낮은 형을 구형하자 검찰과 이 전 부총장 사이에 '플리바게닝'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플리바게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추는 것으로 유죄협상제, 사전형량조정제도라고도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
검찰은 현재 이 전 부총장에 대한 수사를 통해 노웅래·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이어,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대에서의 금품 살포 의혹 등으로도 수사 범위를 대폭 넓히고 있다.
검찰과 형사법 교수들은 대부분 플리바게닝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지난해 12월 "미국 형사절차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플리바게닝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 검찰 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경렬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달 31일 열린 제1회 형사법아카데미에서 "현재는 재판에서 실제로 형이 감면될지 여부가 전적으로 판사 재량에 맡겨져 있다"며 "내부가담자로부터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공범의 회유·협박을 견뎌낼 정도의 법률상 혜택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어 형사면책제도인 플리바게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선고가 플리바게닝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단호한 사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아닌 검찰이 피고인과 사법거래를 통해 형량을 좌우하겠다는 플리바게닝은 우리나라 사법체계에 맞지 않고 정의의 관념에도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며 "검찰이 예상보다 낮은 형을 구형해 재판부도 플리바게닝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법원이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것을 정치 부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법원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