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요동친다. 경제 침체 혹은 회복에 대한 전망도 수시로 엇갈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년 전후를 단위로 예측 수치가 나왔지만, 최근에는 불과 몇 개월 만에 널뛰기 전망치가 수정되어야 할 만큼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올해 연초만 하더라도 美·中 동반 침체로 3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경고가 온통 넘쳐났다. 세계은행과 IMF를 비롯하여 블룸버그와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이에 동조했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불과 1개월 남짓 지난 2월에 완전히 다른 예상이 나왔다. 미국 경제의 연착륙과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 효과로 예상보다 빨리 회복될 수 있다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이른바 상저하고(上低下高)가 대세가 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당장 최대 화두는 미국과 중국 경제의 향방이다. 쌍두마차인 이 둘이 잘 굴러가야 떡고물이 생겨난다. 하지만 3년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양자 간의 골은 더 깊어지고, 세계를 둘로 갈라치기를 하면서 과거와 달리 시너지 효과가 반감하고 있다. 시장·기술·에너지·광물 등과 같은 경제적 매개와 이념과 체제로 묶이는 안보 라인이 동일선상에서 움직이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와해하고 시장 교란과 경제적 파이를 위축시킨다. 결정적인 경제적 한방이 없는 나라일수록 딜레마가 커진다. 자원이 없으면 배후 시장이 있거나 하물며 남보다 월등한 기술이라도 있어야 한다. 또한 美·中에 지나치게 매인 국가일수록 피해를 볼 확률이 높다. 반면 이해관계를 분산해 놓은 국가일수록 손해를 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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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국 시장은 안정적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이후 미국 실물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빅테크 중심의 실리콘밸리가 휘청거린다. 지나친 긴축 경제 운용이 결국 고용과 제조업의 실물 지표가 꺾이는 현상으로 번진다. 불과 2개월 전에 나온 연착륙 시나리오가 다시 경기 침체라는 경착륙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다. 제로 코로나를 고수해 온 중국 경제보다 낫다고 큰소리를 치던 미국 경제에 다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연말까지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연준이 목표하는 기대 인플레이션 2%가 가까운 시일 내 달성이 어렵다고 본다면 금융과 실물경제 간의 긴장감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주력 수출 시장 반전.. 반도체 대신 자동차가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 교체
또 하나 변수는 중국 경제의 안착 여부다. 미국 못지않게 여기에도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우선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폭발적이지 않고 속도가 완만하기만 하다. 서비스업이 호조를 보이지만 제조업 회복 수준은 미지근하다. 선진국 소비 회복 지연에 따른 수출 부진이 일차적 원인이다. 한편으론 외국 공장의 탈(脫)중국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비중 축소 영향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보복 소비에 대한 기대와 달리 의외로 내수 시장 반응은 서늘하다. 생산자 물가지수의 마이너스 행진이 계속 중이고, 소비자 물가지수는 상승세가 미미한 실정이다. 뇌관인 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까지 식지 않아 금융 불안과 개인이나 지방 정부 파산 우려마저 불식되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에 긍정보다 부정이 많아지면서 한국 경제는 더 울상이다. 하반기부터 좋아질 것이라는 ‘상저하고’ 경기에 대한 불씨마저 희미해지면서 깜빡거린다. 광공업 생산이나 수출·내수가 동반 부진하면서 살아날 기미가 희박해 보인다. 심지어 중국의 리오프닝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자체 평가까지 나와 우울감을 상승시킨다. 중국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현지 시장에 팔 수 있는 우리 상품의 가짓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주력인 화장품 기업까지 시장과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보따리를 싸는 기업이 늘어난다. 중간재나 자본재 경우도 중국 공장의 정상화가 관건이지만 이 또한 예전 같지 않다. 중국의 자급률이 계속 높아지면서 한국 제품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형편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위안 대상이던 베트남에서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린다. 수출 둔화, 부동산 시장 침체, 투자 위축 등으로 베트남 경제가 급격하게 둔화하는 모양새다. 현지 진출한 우리 기업에도 불똥이 떨어지고 있다. 이를 눈치라도 챈 듯 외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도 현저히 둔화하는 추세다. 올 1분기 우리의 베트남 투자가 전년에 비교해 70%나 줄었고. 일본 기업의 투자도 40% 이상 줄었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힘겨루기 경쟁에서 엉뚱하게 베트남이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 수출의 경우도 중국이나 베트남에 대해선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으로는 호조세다. 한국 경제의 혹독한 겨울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이 시련을 이겨내기만 하면 주력 시장과 제품의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찾아갈 수가 있다. 과연 우리에게 버틸 힘이 얼마나 남아 있나?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