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신탁방식 택하는 정비사업장 속속…"사업비·속도 강점"vs"높은 수수료·위험부담 우려"

2023-04-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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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최근 서울 시내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이 조합 방식이 아닌 신탁 방식을 택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공사비와 금리 상승으로 사업비를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추진 과정에서 조합 내부 갈등이 늘다 보니 사업비 조달과 추진 속도가 강점으로 꼽히는 신탁 방식을 대안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수수료 부담이 높고 신탁 방식으로 진행하기 위한 동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오히려 사업이 표류할 가능성 등을 들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1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전날 여의도 은하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재건축사업 추진을 위한 예비신탁사(사업시행자) 선정 입찰공고를 냈다.
앞서 여의도 신월시영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도 지난 7일 신탁사 선정을 완료한 뒤 12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도봉구 창동 상아1차 아파트 재건축예비추진위원회는 지난 1일 KB부동산신탁과 신탁 방식 재건축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강북구 미아동 754 일대 역세권주택재개발사업장도 지난달 31일 무궁화신탁과 손을 잡았다.
 
이 밖에 여의도 한양‧공작‧시범‧수정‧광장아파트, 금천구 시흥동 남서울럭키아파트 등이 지난달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선정했다. 목동신시가지 1~14단지 중 가장 규모가 큰 14단지는 최근 신통기획에 신탁사 방식을 선택해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목동신시가지 7단지와 노원구 상계한신3차 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종로구 창신10구역 재개발 추진위도 최근 신탁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신탁 방식은 신탁사가 정비사업 시행사로 참여해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전체 과정을 맡는 형태다. 조합 추진 방식보다 사업 자금 조달이 용이해 조합이 초기 사업비 부담을 덜 수 있고 진행 과정에서 일반 조합원들보다 전문성이 보장돼 추진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평가다. 조합의 '깜깜이 운영'과 공사비 분쟁, 조합 내부 갈등 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최근 조합 방식을 포기하고 신탁 방식을 택한 양천구 신월시영아파트 김시영 재건축추진위원장은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전체 소유주 중 12%만 모금에 참여할 정도로 사업비 조달이 너무 어려웠고, 조합선거 등 각종 절차조차 번번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며 갈등이 너무 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정부도 지난해 사업시행자 지정요건, 사업절차 간소화 등 신탁 방식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줬다. 
 
하지만 신탁 방식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조합이 신탁사에 내는 수수료는 사업비 대비 2~4%에 달한다. 예컨대 사업비 규모 5000억원일 때 약 200억원을 신탁에 수수료로 내야 한다. 신탁사가 시행을 맡아도 사업이 중단 또는 지연될 수 있어 위험 부담도 있다. 단지‧토지 등 소유주 75% 이상, 동별 소유주 50% 이상 동의를 확보해야 하고 토지 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등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잘 모이지 않으면 사업이 오히려 지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신탁 방식에서 다시 조합 방식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있다. 2017년 한국토지신탁과 사업을 추진하던 서초구 방배삼호아파트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는 지난 2월 조합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의율을 충족시키지 못해 사업이 5년 이상 표류했기 때문이다. 김종인 방배삼호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장은 "신탁 방식에 대해 주민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고 사업 진행에 진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강동구 삼익그린3차 재건축도 2017년 한국자산신탁과 MOU를 맺고 사업을 추진했지만 1년 넘게 소유주 75% 이상 동의율을 채우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
 
최근엔 신탁사 선정을 통해 초기 사업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도 퇴색되는 분위기다. 지난 2월 서울시가 시내 모든 정비사업구역에서 조합설립 인가 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게 도시‧주거환경정비법 조례를 개정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시공사들이 초기부터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하면 조합이 신탁 방식을 택할 유인이 낮아지는 것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신탁 방식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발생하는 갈등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사업성이 낮아 추진하기 어려웠던 곳에서는 추진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서도 "신탁사가 시행을 맡는다고 해서 투명성과 사업성을 완벽하게 담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신탁 방식을 철회하고 조합 방식을 추진 중인 한 재건축 정비사업장 관계자는 "신탁사를 택한 것은 사업 추진 속도와 전문성 때문인데 막상 비싼 수수료를 받으면서 전문성도 낮고 법적 절차를 위반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제경 소장은 "신탁사가 시공사에 비해 정비사업 전문 역량이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고 아직까지 가시적인 실적도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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