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본격화된 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 부동산 시장 부진 등으로 국내 가계 여윳돈이 36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이 기간 가계는 자산투자를 줄이는 대신 예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기업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화 약세 등으로 운전자금 수요가 커지면서 전년 대비 더 많은 돈을 금융기관에서 융통했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2년 자금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은 1년 전과 비교해 35조9000억원 늘어난 18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순자금운용액은 예금, 채권, 보험, 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 조달)을 뺀 금액이다. 쉽게 말해 경제주체의 여유자금인 셈이다.
지난해 가계의 자금 운용을 부문별로 나눠보면 국내 지분증권과 투자펀드가 1년 사이 95조9000억원에서 18조6000억원으로 급감했다. 가계가 지난해 사들인 국내외 주식(투자펀드 제외) 규모는 40조6000억원 상당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100조원을 훌쩍 넘었던 전년보다 72조3000억원가량 적은 수준이다. 가계 금융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전년 20.8%에서 17.8%로 3%포인트 급락했다. 대신 수익률과 안전성이 높은 저축성예금 쏠림 현상이 커지면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18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가계가 지난해 조달한 자금은 총 80조6000억원 수준이며 이 중 가계가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규모는 66조8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를 전년(189조6000억원)과 비교하면 3분의 1로 급감했다. 이는 지난해 기준금리 상승이 본격화하면서 덩달아 뛴 대출금리와 주택경기 둔화 등으로 인해 가계의 '빚투(빚을 내 투자)' 관련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의 순자금 조달 규모(175조8000억원)는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으로 운전자금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전년(66조3000억원) 대비 109조5000억원 늘어났다. 특히 한국전력(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을 중심으로 채권 발행이 늘었고 민간기업 대출금도 큰 폭 증가했다. 공기업의 채권 발행 규모는 2021년 17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48조1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문 팀장은 "직접금융 조달 여건이 나빠져 (기업들의) 주식 발행은 축소됐지만 공기업의 채권 발행과 민간기업의 대출을 중심으로 조달이 늘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