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맹인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강화하는 것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가디언·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국영방송에 출연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핵무기를 배치한다고 밝히면서 "무기의 통제권은 넘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동맹국에게 통제권을 넘기지 않은 것과 같다"고 밝혔다.
미국이 나토 동맹국에 핵무기를 배치한 만큼 러시아도 동일하게 대응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 군비통제비확산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핵무기는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 5개국 6개 기지에 걸쳐 100기 정도 배치돼 있다. 특히 벨라루스는 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 등 3개 나토 회원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서방국가들이 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에도 핵무기를 배치했다고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계획에 대해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열화우라늄탄을 제공할 것이라는 성명이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영국 국방부는 의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챌린저2 전차의 포탄 가운데 일부가 열화우라늄탄이라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열화우라늄탄은 우라늄을 농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부산물을 탄두에 넣은 것으로 인체에 핵무기 못지않은 피해를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틴 대통령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 다수와 10대의 항공기를 벨라루스에 이미 주둔시켰고, 오는 7월 1일까지 전술핵무기 저장고를 완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다른 나라에 핵무기 배치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러시아(5977개)는 미국(5428개)보다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아직까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특별한 징후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로이터통신에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지난 1년간 이번 합의에 대해 논의해 왔다면서 "우리는 러시아가 전략적 핵 태세를 조정할 어떤 이유도, 핵무기 사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어떤 징후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전술핵무기 배치를 선언하면서 유럽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빈 군축·비확산센터'의 니콜라이 소코프 선임연구원은 "러시아는 그동안 자국 영토 바깥에 핵무기가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하지만 이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파벨 포비그 러시아 핵 프로젝트 책임자는 벨라루스에 핵무기 저장 장소가 건설 중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