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하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시선을 더 크게 넓혀보면 자연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온 상승을 억제하는가 하면, 수질을 조절하고 물이 잘 순환하게 한다. 또 식량을 공급하고 건축자재, 의약 재료 등 다양한 산업 원료를 제공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생태적 서비스’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란 용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미생물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 등 생명체와 생명체가 존재하는 환경, 즉 생태계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말이 중요해진 이유는 생물다양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인류의 삶과 경제에 위기 신호가 깜빡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생물다양성 손실 이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그동안 인류의 활동은 토지의 75%와 해양 환경의 66%를 심각하게 변화시켰다. 수백만 종이 멸종 위기에 직면하는 등 식물과 동물 종 25%가량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생물다양성 손실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와 경제활동이 본질적으로 여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WEF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중 절반이 넘는 44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 창출이 자연과 생태적 서비스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의존도가 높은 3대 산업은 건설(4조 달러), 농업(2조5000억 달러), 식음료(1.4조 달러)다. 이들 3개 산업의 규모는 독일 경제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게다가 화학, 항공, 여행, 부동산 등 6개 산업의 공급체인이 창출하는 총부가가치의 절반 이상이 자연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창출되고 있다. 이렇듯 자연의 기여도가 큰 만큼 생물다양성이 흔들리고 있는 현상은 그대로 경제 및 경영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 파괴가 가져오는 기업 리스크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먼저, 기업이 자연에 의존하는 데서 오는 리스크다. 커피가 좋은 예다. 기후변화와 병충해, 삼림파괴 때문에 커피 품종의 60%가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면 글로벌 커피 시장은 심각한 불안정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또 기후변화로 인해 대규모의 산호초 손실이 일어나면 관광산업에 대한 부정적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리스크는 기업이 자연에 주는 부정적 영향과 관련이 깊다. 현재 각국 정부는 이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프랑스는 기업이 공급체인에 대한 환경 평가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농업 허가를 제한함으로써 습지 개발 모라토리움(중단)을 선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투자자와 신용평가사도 기업을 평가할 때 환경에 대한 영향을 들여다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리스크는 자연 손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서 생기고 있다. 보건이 적절한 예다. 실제로 우리는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아 온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통해 자연 훼손이 가져오는 파괴적 결과를 지난 3년여 동안 목도해 왔다. 에볼라나 지카바이러스도 삼림 파괴가 발생시킨 감염병이다.
결국 생물다양성 손실은 이를 방치하면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세계은행은 자연이 제공하는 생태적 서비스가 붕괴하면 2030년까지 매년 글로벌 GDP가 2.7조 달러씩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있다. 매사추세츠 등 대학 연구진의 분석 결과를 보면 꽃가루받이를 하는 곤충이 크게 줄면서 과일, 채소, 그리고 견과류 생산이 3~5% 감소하고 이로 인한 식량 부족과 질병 발생으로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42만7000명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다양성 손실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됨에 따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먼저 국가 간 협의 테이블. 이와 관련해 중요한 분기점은 지난해 12월 2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다. 196개국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는 전 지구적 생물다양성 전략 계획인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가 채택됐다. GBF의 핵심은 2050년까지 ‘자연과 조화로운 삶’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고, 이에 앞서 2030년까지 ‘30×30’ 목표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30×30’은 육상과 해상의 각각 30%를 보전·관리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2030년까지 생물다양성 손실을 중단시키고 회복시켜 ‘네이처 포지티브(nature-positive)’를 이루겠다는 로드맵이다.
이와 별도로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기업의 부정적 영향을 줄여나가기 위한 민간의 보폭도 커지고 있다. 이 대열에는 기후변화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처럼 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투자자들은 생물다양성을 기후변화와 같은 기업의 리스크로 보고 있다. 상황이 나빠지면 피투자 기업의 재무 상태가 악화해 자산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기관투자자들이 연합체인 ʻ네이처 액션 100ʼ을 출범시킨 이유다. 이들은 앞으로 100개 핵심 기업을 선정한 다음 해당 기업이 자연을 보호하고 회복시킬 방안을 내놓도록 압박해간다는 계획이다. 투자자들의 움직임과 관련해 눈여겨볼 것은 ʻ자연자본ʼ이라는 개념이다. 자연도 공장이나 기계같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만큼 자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숲, 해양, 물 등 자연 자원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지탱하는 생물다양성도 자연자본에 포함돼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자연자본에 중대하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이를 기업이 지속 가능한 중장기 재무 이익을 창출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자연과 관련된 공시제도의 도입으로 현재 TNFD(자연 관련 재무 공시 태스크포스)가 운영되고 있다. TNFD는 블랙록,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금융기관과 기업 등이 참여하고 있는데 기후 관련 공시 프레임워크인 TCFD와 유사한 틀로 만들어지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자연 관련 지배구조, 전략, 위험관리, 측정 지표와 목표치를 공시하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올 상반기 중에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탄소 배출 등 지속 가능 공시 표준 확정안을 공표하고 오는 9월에는 TNFD도 최종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ISSB는 TNFD와 협의해 기후 공시와 자연 생태계, 생물다양성 등 이슈를 연계하는 안에 대해서도 검토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생물다양성과 자연자본 얘기는 더 이상 기업 경영과 멀리 떨어져 있는 ʻ한가한 이슈ʼ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각국이 파리기후협약에 서명했던 것처럼 생물다양성의 ʻ파리기후협약 버전ʼ을 만들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돈 냄새에 민감한 투자자들이 생물다양성을 기업 가치에 리스크를 가져올 요인으로 보고 공시제도 도입과 함께 경영 관여 등을 통해 기업이 이를 관리해나가도록 제도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ESG, 기후변화, 그리고 생물다양성에 대해 별도 또는 통합의 공시 표준안이 올해 안에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ESG 경영에 있어 ʻ기후변화 다음은 생물다양성ʼ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생물다양성은 기업에 부담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자연 친화적인 경영이 이뤄지면 2030년까지 매년 10조 달러의 새로운 기업 가치가 만들어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젠 ʻ네이처 포지티브ʼ라는 새 물결에 탑승하지 않으면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어려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전향적으로 움직여 새 길을 개척할지 아니면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집착하다가 위기에 직면할지, 선택은 기업 몫이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