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입주 예정인 전세매물이 있다고 해서 중개업소를 찾았더니 전세 보증보험 가입이 되는 집을 계약하려면 보증금에 월세까지 20만원 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전세사기가 무서워 보증보험 안 되는 집에 들어갈 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전세보증금 대출이자에 월세까지 부담하게 생겼네요."(전세계약을 앞둔 서울 은평구 주민 A씨)
21일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5월 이후 전세계약을 앞둔 임대인들이 전세가율 90%에 맞춰 보증금을 조정하면서 월세를 추가로 받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5월부터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 100%에서 90%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집값 대비 전셋값이 90%를 초과하는 주택은 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된다. 이에 임대인들이 전세금을 기존보다 낮춰 손해보는 만큼 월세를 받아 충당하려고 하면서 세입자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2억2000만~2억3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던 중구 황학동 빌라 전용 20㎡는 최근 전세보증금 1억9000만원, 월세 2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은평구 진관동 오피스텔 전용 20㎡도 5월 계약 만기를 앞두고 기존 1억4500만원 전세에서 1억2500만원·10만원 반전세 매물로 조정됐다.
기존에 전세가격을 높게 책정했던 임대인들이 전세가율을 90%로 낮추면서 부담은 임차인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5~6월 전세계약 예정인 영등포구 주민 B씨는 "월세로 살다 주거비용이 너무 부담돼 전세를 알아보는 중인데 대부분 전세대출 이자에 월세까지 내야 해 주거비용이 만만치 않겠더라"고 토로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대체로 사회초년생,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비아파트 유형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대적 약자인 임차인으로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월세 부담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집주인들이 손해보지 않으려고 꼼수를 쓰면서 서민 주거비용이 증가하게 됐다. 신규 계약자뿐만 아니라 갱신 계약하는 임차인들도 갑자기 월세를 부담하려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사고 예방을 위해 전세가율 하향은 필요한 조치지만 임차인들에게 비용이 지나치게 전가되거나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혼란을 겪는 건 임차인뿐만이 아니다. 은평구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 중에 보증금을 낮추기 싫어 전세보증보험 가입하지 않겠다는 분들도 있어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한 공인중개사도 "임대인들에게는 전세보증금 조정을 요청하고, 임차인들에게는 이런 사정으로 월세를 내야 한다고 설명해야 해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털어놨다.
이렇다 보니 보증보험 가입 없이 계약하자며 유인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또 다른 은평구 공인중개사는 "임대인이 전세가율을 10% 낮춰야 하는 5월이 오기 전에 얼른 전세계약을 하고 싶어한다"며 "기존 전세보증금에서 3~4% 낮춘 좋은 금액에 나왔으니 4월 말 안에 계약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오는 6월 말부터 임대사업자가 임대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전월세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전세사기 피해 사례에서 임대사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례가 다수 드러난 데 따른 조치다.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피해 지원 방안 후속으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21일 밝혔다. 주요 내용은 △임대사업자 보증보험 미가입 시 임차인에게 계약 해제·해지권 부여 △보증보험 가입을 위한 주택가격 산정 시 공시가격 우선 적용 △감정평가액 적용 시 감정평가사협회 추천제 도입 등이다. 개정안은 6월 말부터 시행되며 시행 이후 체결된 임대차 계약부터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