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콘텐츠와 플랫폼의 역동적 관계 설정… 제도 혁신 필요하다

2023-02-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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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콘텐츠가 쏟아지는 미디어 환경에서 화제가 되는 콘텐츠 역시 특정해서 말하기 어렵겠지만 ‘피지컬: 100’은 텍스트 자체와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 양쪽 모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피지컬: 100’으로 인해 다시 촉발되고 있는 콘텐츠와 플랫폼 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쟁점이다. 넷플릭스 진출 당시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부정적이었던 지상파 MBC가 ‘피지컬: 100’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것은 플랫폼 환경의 변화가 제작 과정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유건식은 ‘피지컬: 100’에 대해 국내에서 제작한 예능이 글로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지상파 방송사가 다른 플랫폼에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IP를 넷플릭스에게 줘야 하고 인력이 방송사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유건식 (2023. 2. 13). ‘피지컬: 100’성공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

넷플릭스와 협업한 주체가 지상파라는 것이 쟁점화되고 있는 것이지 넷플릭스와 국내 방송 사업자 간의 긴장과 협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국내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국내 사업자와 협업을 진행해 왔다. 넷플릭스로 인해 국내 콘텐츠와 콘텐츠 제작자들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전반적으로 제작환경이 개선되었다는 긍정적 측면과 제작비가 상승하고 IP를 획득하지 못한다는 부정적 측면이 각각 존재한다는 것도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IP 관련 쟁점은 ‘오징어 게임’을 계기로 현재까지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피지컬: 100’으로 인해 넷플릭스와의 협업이 새삼스럽게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소극적이었던 지상파 사업자까지 넷플릭스와 협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것은 콘텐츠와 플랫폼이 맺고 있는 관계가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화와 융합이 심화되기 이전 방송산업에서 콘텐츠 제작과 유통 과정은 정태적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대전환이 진행되고 OTT와 같은 인터넷 기반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콘텐츠와 플랫폼 사이의 관계가 동태적으로 변화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 설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성민은 디지털 전환 심화에 따른 매체 환경 변화를 액체 미디어라는 개념을 통해 접근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미디어는 조건에 따라 액체와 같이 유연하게 형식과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액체 미디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성민, 「콘텐츠 IP 시대, 트렌드 읽기」, 김경달 외(2022).『디지털 미디어 인사이트 2023』. 서울: 이은북>).

OTT 등장 이후 콘텐츠와 플랫폼이 맺는 관계는 이성민이 얘기한 액체 미디어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SVOD 진입 초기에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사업자들은 OTT 오리지널 혹은 익스클루시브 콘텐츠 위주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사의 콘텐츠 방영권을 획득하여 제공하기도 하고, 오리지널로 제작한 콘텐츠 방영권을 방송사에 판매하기도 한다. OTT 오리지널 ‘위기의 엑스(X)’,‘약한영웅 클래스1’,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등은 OTT에서 공개된 이후 방송사들을 통해 방영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통 양식은 언제 변화할지 모른다. OTT로 인해 레거시 방송 매체 이용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OTT 플랫폼과 레거시 방송 플랫폼은 서로의 특성을 참조해 나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문제는 레거시 방송 사업자들은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콘텐츠와 플랫폼 어느 한쪽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서로를 활용하면서 협력과 긴장의 관계를 맺고 있다. 넷플릭스가 국내 사업자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교섭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넷플릭스가 콘텐츠 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IP를 넷플릭스가 가져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넷플릭스는 제작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주고 경쟁력 있는 제작자와 협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OTT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에 따라 콘텐츠 수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높아진 수급 단가로 인해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들도 콘텐츠 투자를 줄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드라마 위주의 투자에서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 예능 중심으로 투자 방향이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플랫폼의 상황 변화가 콘텐츠 제작 양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OTT와 같은 인터넷 미디어는 필요에 따라 콘텐츠 수급과 공개 방식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요금제나 서비스 전략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레거시 방송 미디어 사업자는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콘텐츠와 플랫폼의 역동적 관계 설정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레거시 방송 사업자도 현재의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제 수준을 낮춰줘야 한다는 지적은 수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정부도 관련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디지털 대전환 환경에서 인터넷 기반 미디어들이 다양한 실험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레거시 방송 미디어 사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레거시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제도 혁신 필요성은 재정적 어려움이 커진 2023년에 더욱 높아지고 있다.

법제도는 기술의 진화와 시장의 진화보다 늦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간극이 더욱 커지고 있고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어 디지털 영역에 있는 사업자들도 성장이 쉽지 않은 환경에서는 법제도적 개선을 통해 사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콘텐츠와 플랫폼 간 관계는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모든 사업자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와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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