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리 잃은 K팩토리] 해외서 힘 못 쓰는 한국기업 현지 공장 차갑게 식어간다

2023-02-1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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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러 진출 국내업체만 가동률 '뚝'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첨단산업

국가 간 정치·외교적 문제에 큰 영향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국내 산업권이 전반적으로 업황 악화가 예고된 가운데,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한국기업의 해외 현지 공장이 개점휴업 상태에 놓였다.

중국·러시아 본국 기업의 공장은 가동되는 반면 국내기업의 현지 설비만 유독 가동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정치·외교적 문제가 경제 부문에도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최악의 경우 중국·러시아 시장을 포기하고 현지 공장을 철수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중국·러시아 현지 공장의 가동률이 매우 낮아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는 국가 간 정치·외교적 문제에 더욱 큰 영향을 받아 설비를 돌리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 미국 상무부는 이르면 이달 중 반도체법에 대한 세부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관련 투자에 대해 527억 달러(약 67조원) 규모로 보조금·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신 지원 조건으로 10년 동안 중국처럼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에 투자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도 지원을 받은 이후 중국·러시아 등 우려국가에 투자를 하게 되면 상무부에 보고할 의무가 발생한다.

또 올해 하반기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중국 공장에 반도체 생산 장비를 도입하려면 미국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미국 상무부가 중국에 자국 기업이 생산하는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을 금지한 조치가 적용되는 탓이다. 그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미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 장비를 구매해 중국에 공장을 늘려왔으나 앞으로는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반도체 한파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SK하이닉스는 최근 중국 현지 공장에서 감산을 하는 '특단조치'까지 취했다. 불황으로 인한 감산 경영 체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미·중 간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경우, 삼성·SK 등 반도체 기업이 '철수' '투자 중단'이라는 카드까지 꺼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자동차도 미국의 인플레이션 방지법(IRA) 등의 영향으로 유사한 상황을 맞았다. 중국산 부품을 다수 활용하는 현대자동차의 전기차는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놓고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현대자동차 러시아 현지공장은 100% 휴업 상태 중이다. 재가동이 불투명한 상황에 놓인 이 공장은 2000명 이상의 정리해고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현지 경쟁 기업들에 비해 중국·러시아 현지 공장의 가동률이 유독 떨어진다는 점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9~10월 중국 진출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영환경 실태조사 결과 현지 공장 가동률이 60% 미만이라는 응답이 5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지난해 10월 중국기업의 설비 가동률인 75.1%와 큰 차이가 있다. 조사 방법의 차이로 두 수치를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으나 전문가들은 양국 기업의 공장 가동률 차이가 10%포인트 이상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기업은 현지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 및 공급망 문제와 함께 중국 당국의 한국 기업에 대한 정책·규제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태조사 결과 중국 현지에서 매출 등이 줄어든 원인에 대해 미·중 갈등과 현지 정책·규제를 1순위로 꼽은 기업이 합계 10%로 적지 않았다.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 수요 부진(46%)과 경쟁 심화(13.8%)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중국 기업에도 같이 적용된다. 이를 감안하면 현지의 경기 상황 탓에 국내 기업의 공장만 가동률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쟁 상황인 러시아는 물론 중국에서도 현지공장이 점차 애물단지가 돼가고 있다"며 "현지 기업들과의 가동률 차이는 추후 시장 주도권에서 밀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봉쇄된 천안문 광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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