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정보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문자 통역이 있을까?’ ‘수어 통역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지난 11월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일시적 개입’전에 전시 된 ‘다애나랩’의 작품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는 내 앞의 벽에는 민감했지만 타인의 벽에는 둔감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두터운 장벽을 조금씩 허물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국민의 정보·문화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국수어교육원을 17곳으로 늘리고 공공수어 통역을 2027년까지 연평균 2000회로 확대해 지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수어 정책 비전과 방향을 담은 '제2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농인은 청각장애인 중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국내에 약 5만200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농인의 0.5%만 유아기(6세 이하)에 한국수어 학습을 시작하며 절반 이상(50.3%)이 학교(7~12세)에서 한국수어를 습득하고 있다.
우선 한국수어 제도 및 기반을 확대한다. 농인 등을 위한 한국수어교육원과 한국수어교원 양성 교육기관을 각각 17곳(전국 17개 광역시·도별 1곳)으로 확대한다. 수어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수어교원은 현재까지 2급 교원만 배출됐으나 1급 승급을 위한 교육 과정과 지침을 마련해 교원 자격 제도를 보완한다.
또한 누구나 한국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대상별 맞춤형 교육과정과 교재도 개발한다. 농학생을 위해 지난해 12월 '2022 개정 특수교육과정'에서 내년부터 적용할 수어 과목을 편성했고, 농아동과 농인 가족(자녀와 부모 등) 등을 위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교육 과정과 교재를 개발해 수어교육원 등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지금껏 국가가 개발한 한국수어 교재는 농인 성인용으로 개발한 ‘한국수어’ 문법서가 유일했다.
공공영역의 한국수어 통역 지원 범위를 정부 정책 발표에서 공공기관·문화예술기관 발표로 확대한다. 통역 지원 횟수도 지난해 기준 연평균 440회에서 2027년까지 연평균 2000회 이상으로 늘린다. 박물관·미술관 등의 전시 정보와 K-영화에 대한 한국수어 통역 영상을 제작해 농인들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수어방송 품질을 높이도록 장애인방송 품질 평가 체계를 마련하고, 농인의 미디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미디어 음성을 한국수어로 변환해주는 인공지능 기술도 개발한다.
아울러 한국수어-한국어 말뭉치를 연간 100만 어절씩, 2027년까지 600만 어절을 구축해 한국어와 한국수어 간 자동 통역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수어 말뭉치를 기반으로 한 ‘한국수어-한국어 사전’과 ‘한국어-한국수어 사전’의 양방향 사전 편찬 계획도 수립한다. 2026년까지 한국수어 4000개 규모의 ‘한국수어-한국어 사전’을 편찬한다. 이 사전은 한국수어의 의미, 한국수어와 한국어 용례, 수형(손모양) 그림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한국수어 형태를 종합적으로 검색하는 기능도 탑재한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제2차 한국수어발전 기본계획을 통해 농인과 그 가족을 위한 수어 교육기관 확대, 수어통역 지원 정책은 물론, 농인과 비농인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함께 민간에서도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주식회사 ‘닷’(dot)은 지난 1월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3’에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촉각 그래픽 장치 ‘닷 패드(Dot Pad)’로 ‘접근성(Accessibility)’ 부문에서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닷 패드’는 도형, 기호, 표 등 PC, 모바일 디스플레이의 시각 그래픽을 2400개 핀의 촉각 그래픽으로 표시해 시각 장애인에게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그림과 이미지를 손가락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닷’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김지호 닷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서울에서 열린 ‘CES 2023 비즈니스 리뷰 & 인사이트’에서 “학습에 필요한 모든 콘텐츠를 촉각 셀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라며 “장애인이 유치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교과 과정 중 그림을 못 접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림 콘텐츠를 무상으로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학습할 때마다 쓸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