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저성장 늪에 빠진 韓경제 …발상 바꿔야 활로가 보인다

2023-02-0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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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2023년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심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이 전방위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모습에 당혹스러울 정도다. 얼마 전 일본 노무라연구소가 금년 한국 경제가 0.6% 역성장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때만 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기류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동향을 보면서 적어도 0%대 안팎까지는 추락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듯한 모습에 걱정이 크다. 특히 내년 초에는 총선이 있다.
우선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0.4%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조정한 것이므로 기저효과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2021년 4분기 1.3%에서 지난해 1분기 0.6%, 2분기 0.7%, 3분기 0.3% 성장으로 하락해 오다 드디어 4분기에 0.4% 역성장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처럼 추세적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큰 폭의 수출 감소와 민간소비 감소, 건설투자 부진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나마 정부소비지출이 상당 부분 보완했는데도 역성장으로 추락했다.
이러한 추세가 새해 들어 더욱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다. 올해 1월 수출은 462억7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6.6% 감소했다. 수출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한국 경제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 업황 악화로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졌다. 이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3∼8월 이후 처음으로 4개월 연속 감소세다.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 수출액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과 수요 감소로 1년 전 대비 44.5% 급감했다.
그 결과 새해 첫 달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126억8900만 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무역수지는 11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11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 1월∼1997년 5월 연속 적자 이후 25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걱정이다. 경상수지는 2021년 883억 달러, 2022년 250억 달러 흑자였다. 한국은행은 금년에는 280억 달러 흑자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상반기 부진한 수출이 하반기 회복된다는 전제하에 전망하고 있는 수치다.
대외 여건도 만만치 않다. 중국 경제가 코로나 이후 다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미·중 쟁패와 충돌이 계속되고 있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저비용·고효율을 추구해온 세계화가 크게 약화되고 있다. 경제를 안보와 함께 전략적으로 고려하는 경제안보의 범위가 관련 전략기술의 확보뿐만 아니라 에너지·원자재의 안정적인 공급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대외적 요인들이 한국 경제에 중대한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2.6% 증가한 민간소비는 금년에 2.7%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연 이 정도라도 증가할 수 있을 것인지 여건이 만만치 않다. 우선 취업자 증가 수가 8만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의 경직적 운용으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초토화시킨 소득주도성장정책 전에는 연평균 30만~40만명씩 증가하던 취업자가 반의 반 토막 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가는 여전히 고공 행진이다. 설상가상으로 1871조원(지난해 3분기 말)에 달하는 가계부채에다 고금리로 소비여력이 바닥나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민간소비는 빈사 상태를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과 소비가 줄어드는데 투자가 늘 리 없다. 이미 제조업가동률도 70% 수준이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0.7% 역성장에 이어 금년에도 3.1% 역성장할 것으로 한국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역성장을 전망하고 있을 정도로 기업의 투자 여건은 말이 아니다. 고임금과 강성 노조에 높은 세금과 각종 규제가 겹겹이 기업 투자 환경을 옥죄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혁을 강도 높게 외치고 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경쟁국보다 높은 법인세·상속세는 여전하고 연구개발세액공제와 투자세액공제도 미흡한 수준이다
기업 투자가 줄어들면서 생산력지수가 지난해 0.7% 감소했다. 수출 부진과 삼성‧LG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 철수 등으로 지난해 제조업 생산능력이 4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제조업 생산능력 지수는 1971년 통계 작성 이후 줄곧 상승하면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4.9%)과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5.2%)에도 꺾인 적이 없었는데 2018년 GM대우 군산 공장 철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 등으로 처음 –0.1%를 기록한 후 지난해 4년 만에 다시 감소했는데 감소 폭은 2018년보다 크게 높았다. 한마디로 제조업 성장잠재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심각한 실정을 반영하고 있다.
전략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 공장 부지 선정부터 실제 가동에 들어갈 때까지 걸린 기간이 용인 8년, 평택 7년, 가오슝(대만)·텍사스(미국) 3년, 시안(중국) 2년 등이다. 한국이 대만, 미국, 중국 대비 최소 2배에서 많게는 4배의 기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텍사스에 투자했더니 미국은 '삼성 고속도로'를 선물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 1위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은 작년 10월 뉴욕에 신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준공 일정은 3년 뒤인 2025년이다. 세계 반도체 1위를 노리는 TSMC는 첨단 기술력과 함께 대만 전역에 반도체 공장을 빠른 속도로 확장하는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대만은 반도체 공장 건립을 위해 총통부터 각 부처 장관, 지자체장까지 ‘원팀’을 꾸려 토지, 용수, 인재 공급 계획뿐 아니라 TSMC의 애로 사항까지 사전에 파악해 대응할 정도다.
반면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공장 부지를 선정했지만 수도권 규제 예외 적용, 토지 보상, 용수 인허가 등에 번번이 발목 잡혀 8년 만인 2027년에야 가동이 예상된다. 그것도 예상이다. 반도체는 ‘투자 속도전’이 생명인데 이래서야 한국이 반도체 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가 크다. 중앙 부처나 지자체 모두 한국 공무원들은 아직도 ‘대기업 특혜’라는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을 보며 ‘공장 짓게 해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는 식이고 지자체에서도 인허가를 무기로 별의별 요구를 다 해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한심한 실정이다.
건설투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3.5% 역성장한 건설투자는 2.2% 역성장으로 개선될 것으로 한국은행은 전망하고 있지만 실상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건설업계가 견딜 수 있는 미분양 마지노선을 6만5000가구로 보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 중 10만가구 가까이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분양이 늘면 바로 금융 리스크로 이어진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가 지난해 9월 말 163조원으로 2021년 같은 기간보다 82% 증가해 지방에 투자한 중소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부실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퇴장을 위한 ‘대주단협의회’와 ‘부실 PF 매입·정리 펀드’ 등 19조원 규모에 이르는 대책을 꺼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집값 하락세가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근 1년간 수도권 아파트 값은 지수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거래량도 가장 적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고금리 충격이 커지고 있고 전셋값의 지속적인 하락이 매매가격을 더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순수출(수출-수입)증가율, 소비증가율, 투자증가율의 합이다. 수출, 소비, 투자 어느 한 분야도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첩첩산중 사면초가다. 더욱이 경기를 회복시키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정부가 다시 수정해서 국회에 제출한다는 법인세 인하안이나 투자세액공제안, 연구개발세액공제안도 경쟁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노동 개혁은 대통령의 계속되는 개혁 의지 표명에도 여전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그나마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할 수 있는 정책은 획기적인 규제 혁파,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육성, 포스트 코로나 시대 크게 늘어날 전망인 외래 관광객을 끌어올 수 있는 획기적인 관광산업 활성화 등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이 모두를 종래와는 다른 담대한 발상의 전환으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의 순방으로 불기 시작한 중동붐도 살리고 부동산발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중첩된 규제를 과감하게 푸는 등 부동산 규제도 더 완화해야 한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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