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이 지났다. 입춘은 겨울을 깨우는 자명종과 같다. 자명종이 울린다고 바로 일어나기 힘든 것처럼, 입춘이 지난다고 바로 봄이 오지는 않는다. 눈과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우수(雨水)’를 지나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도 보내야 봄이 오듯이 길었던 겨울이 끝나는 과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 경기 흐름 안에도 둔화와 침체를 지나 개선으로 향하게끔 할 수 있는 조짐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고자 한다. 글로벌 금융과 실물 분야에서 투톱을 달리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미국 실물경제 흐름은 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80년대 이후 가장 강력한 긴축적인 통화정책의 영향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률 자체로 보면 연간으로는 플러스로 수렴되더라도 분기 성장률에서는 마이너스가 보이면서 시장이 혼란을 경험할 가능성도 있겠다.
낮은 성장세인 흐름 가운데 경기가 둔화되는가 아니면 침체냐 하는 것이 단어가 주는 어감 말고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어감 차이가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온 세상 정보가 공유되는 지구촌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의 형님격인 미국 경제가 후퇴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 금융시장에서는 소화하기 힘들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영향력이 큰 미국의 금리 흐름은 어떻게 흘러갈까. 2022년 1월 0.2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2023년 2월 현재 4.75%까지 상승했다. 지난 1년 동안 지하실에서 최상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온 느낌이다.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 흐름은 지난 1년간의 상승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작년처럼 쉼없는 상승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준 의장이 바라보는 미국 물가의 상승 전망에 변화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2월 1일 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파월 연준 의장은 ‘디스인플레이션’을 언급하면서 물가 상승 둔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물론, 이날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연준 의장의 이러한 언급을 고려하면 작년에 그렇게 달려왔던 금리 인상 기조는 빠르면 올해 내내 지속되지는 않을 것처럼 보인다.
중국 경제가 반등하면 분명히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해외 시장에서 한국은 중국과 경쟁이 더 치열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교역도 예전만큼 활기를 찾기 힘들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AI 등 첨단 분야에서 요구하는 메모리 수요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기회의 요인도 상존한다.
국내 경제가 밝지 않은 부분은 대외 교역보다는 내수 분야에서 더 많이 감지된다. 가장 큰 요인은 고물가 및 고금리 상황이다. 코로나로 억눌렸던 소비가 반등하는 효과가 점차 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물가 지속으로 지갑이 얇아지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은 훨씬 더 약해지고 있다. 물가가 언제까지 높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인플레이션, 그리고 변동성이 많은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물가 수준은 여전히 높다. 높은 물가 수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과연 하락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작년 하반기의 상승세에서 조금 하락 기조로 변환되었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금리로 인한 채무 상환 부담은 높다. 월급은 그대로이면서 물가는 높고 빚 갚는 데에 들어가는 돈은 몇 년 전보다 더 많은 답답한 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대내외 흐름이 기본적으로 밝지 않은 상황에서 조심스럽지만 일부 밝은 조짐이 올해 하반기에는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것은 사실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냇물을 건널 때에는 결코 흐르는 물을 보지 말고, 건너편 물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건널 것을 강조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물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기 위해 흐르는 물을 보게 되는데, 이때 치명적인 시각적 착각을 일으켜 뒤뚱거릴 수 있다. 즉,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닥을 내려보는 순간, 초점이 흐르는 물로 좁아지면서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가져오게 된다. 순간 몸을 바로잡기 위해 움직인 행동은 실제로는 몸의 중심을 헝클어뜨리는 부작용을 야기하여 스스로 쓰러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성장세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어려운 상황의 한국 경제이다. 대내외 불확실한 여건은 언제나 있었다. 그것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위기 극복을 위한 목표와 단계적인 해결 방법에 집중하면 올해 연말에는 난기류를 잘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홍준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