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국가보훈처는 최근 미국 뉴욕 마운트 올리벳 묘지와 황기환 지사 유해 파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지난 2013년부터 황 지사의 유해 봉환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묘지 측이 유족 동의 없는 파묘를 위해선 법원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보훈처는 2019년과 2022년 현지 법원에 유해 봉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사의 유족이 없음을 확인할 공적 자료가 없어 지금까지 법원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황 지사는 미국 유학 중 미군에 자원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이후 1919년 6월 프랑스로 이동해 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파리로 온 김규식을 도와 대표단의 사무를 협조했다. 이어 임시정부의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독립 선전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러시아 무르만스크에 있던 노동자 200여 명이 일본에 의해 강제 송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을 펼쳐 홍재하 등 35명을 극적으로 구출해 프랑스로 옮겼다.
1920년 1월에는 프랑스 파리 주재의 한국선전단 전전국장으로서 불문(佛文) 잡지를 창간했다.
1921년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주차영국런던위원으로 임명돼 ‘영일동맹과 한국’이란 서적을 편집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것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해 5월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통신부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전우회를 조직해 한국의 외교 사업을 후원했다.
그는 1923년 4월 17일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숨져 현지 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보훈처는 미국에 유해 봉환반을 파견하고 현지에서 추모행사 등 본격적인 유해 봉환 준비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유해가 봉환되면 정부 주관 봉환식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