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문희 "'영웅' 아들을 둔 어머니…마지막 편지엔 어떤 마음 담았을까"

2023-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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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나라 위해 목숨 바치라' 완벽히 공감하긴 어려워

감독도 욕심낸 '내아들 도마' 노래할 땐 대사·감정 위주로

성우로 데뷔해 쉰 넘어 인기 얻어…여우주연상 받고 열등감서 해방

배우로서 필요한 건 '평소의 삶'…쓰레기 직접 버리고 대중탕도

오랜 사랑 비결은 '유연한 태도'…자기 자신을 가둬서는 안돼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 역 맡은 배우 나문희[사진=CJ ENM]

배우 나문희는 '치트 키'(cheat key, 게임을 유리하게 하려고 만든 문장이나 프로그램) 같은 존재다. 어느 작품, 캐릭터든 완벽하게 소화하고 극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며 관객의 마음마저 허물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에서도 그랬다.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담아낸 이 작품에서 나문희는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를 연기해 관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사실 전 이 작품에 출연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이 작품을 찍기 전까지 '조마리아'에 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남들 아는 정도만 알고 있었죠. 하지만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의 부담도 커졌어요. '조마리아'에 누를 끼칠 거 같아 출연이 망설여졌죠."

'조마리아'는 자식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쓰린 마음을 숨긴 채 아들 안중근의 선택과 신념에 묵묵히 지지를 보낸다. 안중근이 고뇌에 빠지거나 두려움의 순간에 봉착할 때마다 조마리아의 가르침은 큰 깨달음으로 돌아오고 존재만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국경 너머 하얼빈역에서의 거사와 안중근이 여순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조마리아. 사랑하는 아들 안중근에게 마지막이 될 편지를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간다.

"'조마리아' 여사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어요. 저는 지금도 완벽히 공감하진 못하겠어요. 엄마에게 자식은 나이가 많든 적든 다 똑같거든요. 자식이 우선이죠. 그런데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 의사에게 '일본군에게 목숨을 구걸 말고 죽으라'고 하잖아요. 자식에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한다니.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감히 이해하기 어려운 심정이죠."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 역 맡은 배우 나문희[사진=CJ ENM]

무거운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 평범한 어머니가 아닌 '영웅'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을 낱낱이 헤아려 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분야와 연기로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조마리아' 여사는 평범한 엄마와 다른 시선을 가진 분이니까요. 제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죠. '안중근' 의사가 떠나고 난 뒤 그는 여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에 임했어요."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하기까지 심정적으로도 부담이 컸지만,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따랐다. 60년을 훌쩍 넘긴 연기 경력을 가졌는데도 뮤지컬 영화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다.

"'조마리아' 역할도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노래까지 불러야 한다니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걱정한다고 뭐가 해결되겠어요? 시키면 해야지. 하하. '내 아들 도마' 넘버는 참 어렵게 찍었습니다. 신 자체도 어려웠는데 제가 나이도 있으니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치더라고요. 노래를 라이브로 계속 해야 하니 더욱 힘들었어요. 게다가 윤제균 감독이 그 장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여러 차례 찍었어요. 욕심을 내더라고요. 노래할 때는 음은 생각하지 않고 대사와 감정 위주로 했어요."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 역 맡은 배우 나문희[사진=CJ ENM]


나문희는 해당 장면을 위해 음악을 전공한 큰딸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선생님이었던 큰딸을 두고 "잔인한 데가 있다"라며 농담하기도 했다.

"그래도 음악과는 밀접하게 지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 제가 1961년 문화방송(MBC) 라디오 공채 성우 1기로 데뷔했는데 그땐 참 가난해서 '메트로'(명동에 위치한 유명 음악 감상실로,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림)에서 DJ로 일도 했었거든요. 시간제로요. 오전 중에는 그곳에서 책도 읽어주고, 음악 감상도 했어요. 그때 음악 공부를 많이 했었죠. 시집가서는 아이들이 음악 공부를 하니 제가 아는 만큼 알려주기도 했었고요."

무서운 선생님이었던 큰딸은 영화 '영웅'을 어떻게 보았을까? 나문희는 "큰딸이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라며 대신 소감을 일러주기도 했다.

"영화가 참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펑펑 울었대요. 옆에 앉은 사람이 너무 울어서 자기도 눈물이 났다면서요. (촬영할 때는) 힘들었는데 영화가 이렇게 나오니 보람이 있네요."

나문희는 1961년 MBC 라디오 공채 성우 1기로 데뷔해 연극과 드라마·영화를 오가며 연기 활동을 해왔다. 오래 연기 활동을 해왔지만 인기 배우 반열에 오른 건 50세 이후였다. 그는 "열등감이 컸다"라고 고백하며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로 첫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열등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열등감이 컸지. 경쟁의식도 심했고요. '아이 캔 스피크'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난 뒤 그런 감정이 사라졌다고 할까요?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내가 더 잘나졌나 봐요, 하하."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 역 맡은 배우 나문희[사진=CJ ENM]

그는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스크린으로 번지는 '실버 세대' 배우들의 활약에 관해서 기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여정씨를 보면 샘이 나기도 하지만 참 좋아요. 어딜 가든 자기 자리에 잘 서 있는데 참 훌륭해요. 개인적으로는 이순재 선생님을 존경하는데. 수원에 가면 나혜석로(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나문희의 고모 할머니)가 있는 것처럼 대학로에는 '이순재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데뷔한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문희에게 촬영 현장은 놀이터 같다.

"솔직히 연기 자체는 즐겁지 않아요. 그날그날은 잠도 못 자고 앓을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현장을 가면 아직도 철없이 신나요. 그래서 아직 연기를 할 수 있나 봐. 그런 게 저의 원동력 같아요."

나문희는 배우에게 중요한 건 "평소의 삶"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상을 매우 소중히 여겼고 일상의 삶을 작품과 역할에 녹여내고 있었다.

"배우로서 중요한 건 '평소의 삶'이에요. 나를 통해 극 중 인물이 창조되는 거니까. 평소에 제대로 살아야 연기에도 반영이 되거든. 전 음식물 쓰레기도 직접 버리고, 대중목욕탕도 가며,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기도 해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걸 깨고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요. 또 그래야만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연기를 해낼 수 있고요. 예를 들어 된장찌개를 끓여도 진짜 끓일 줄 아는 사람과 흉내 내는 사람은 다르지 않겠어요?"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 역 맡은 배우 나문희[사진=CJ ENM]


나문희가 이토록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유연한 태도' 덕이었다. 그는 "자기 고집을 세우지 않고 유연한 것이 중요하다"라며 "자기 자신을 가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가 할머니 합창단에서 피아노를 쳐요. 딸애가 말하기를 '엄마, 유연성을 가져야 해'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저를 교육하곤 해요. 시대가 바뀌었지. 예전에는 영감님 이야기를 들었다면 지금은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잘 맞추려고 해요."

그는 유연하게 시대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나문희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 '뜨거운 싱어즈' '진격의 거인'에 출연하기도 했고, MZ세대의 상징으로 취급받던 틱톡에 영상을 올리며 젊은 세대들과 함께 어울렸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참 어렵더군요. 전 (예능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재주는 없는 거 같아요. 틱톡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하고 보니 매일 움직일 수 있는 게 참 좋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의 감각도 익히게 되고요. 물론 하다가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시작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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