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필자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한·중·일 협력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세미나에서는 외교·안보, 경제·통상 분야에서 한·중·일 세 나라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와 방안을 논의하였다. 과연 이들 세 나라는 효과적인 협력의 틀과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세미나에서 논의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가까운 이웃인 세 나라가 여전히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격화되는 작금의 국제질서 속에서 한·중·일 세 나라의 소통과 협력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제적 번영, 나아가 이 지역에서의 평화공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번 세미나에서 드러난 세 나라의 주장과 관심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살펴보자.
먼저 외교·안보 분야다. 중국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핵심국가이익’을 강조한다. 중국의 핵심국가이익은 영토와 주권, 정치체제, 그리고 중국 독자의 경제성장방식 등 양보할 수 없는 이익이다. 그리고 이를 침해할 경우 타협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표명된다. 중국은 다국주의를 강조하며 이 지역 외부에 있는 세력에 의한 간섭을 배제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간섭을 비판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일부 국가들의 그룹 활동을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경계한다. 일본에 대해서는 미국 종속화를 우려하며 비판한다. 중국의 현대화 정책은 미국을 이기고 글로벌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협력에 대한 입장도 사뭇 달랐다. 중국은 그린 전환에서의 협력을 강조하였다. 한·중·일 세 나라는 전 세계 3분의 1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어서 이를 줄이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중국은 이를 위해 석탄의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한다는 방침인데 특히 세 나라의 재생에너지 협력을 강조하였다. 한·중·일의 수소에너지 협력은 신흥 성장분야이며 실제로 세 나라 기업 간의 협력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일대일로의 대상 국가들을 중심으로 중·일, 한·중 간의 재생에너지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역량을 일대일로 사업의 추진에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의 클린에너지 그리드 협력에 대해서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협력을 위해 중국은 건전한 경쟁의 규칙을 만들고 클린 에너지 산업의 공급망을 지역 내에 구축하며 한·중·일+제4자 간 장기협력 메커니즘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에 반해 일본은 입장이 전혀 다르다. 일본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수소에너지 분야에서 클린 수소의 안정적 공급 확보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협력체제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에는 미온적이다. 오히려 일본측 발표자는 탈(脫)중국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일본 기업은 1990년대 중국 진출 이후 2000년대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 중심 공급망을 전기·전자, IT,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구축하였으나 2010년대 이후 생산거점으로서의 중국보다 시장으로서 중국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아세안의 생산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아세안으로의 거점이동이 늘어났다. 2015년 이후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시장으로서 중요성 증가와 더불어 이들 이외 동남아 국가로의 생산거점 이동이 발생하였고 특히 이 시기부터 일본 국내로의 회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020년 이후에는 코로나, 엔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인하여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공급망 재구축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판국에 중국과의 협력이 왜 필요한가? 일본 발표자의 반문이다. 일본 기업은 중국 시장을 잃고 싶지 않지만 국제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탈 중국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일본의 한 학자도 그린 전환이든 디지털 전환이든 왜 한·중·일 협력을 해야 하는지 중요성을 모르겠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미국이나 EU와 협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으냐며 반문한다.
통상협력에서도 세 나라의 입장은 서로 다르다.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IPEF, CPTPP, 그리고 RCEP이다. 중국은 CPTPP에 가입을 요구하며 협상하고 있는데 일본은 중국의 가입에 부정적이다. 한국도 CPTPP에 가입하고 싶어하지만 일본은 이를 협상카드로 사용하고자 한다. 즉 수산물 수입규제 해제나 징용노동자 배상과 관련한 갈등을 해결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 주도의 IPEF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소그룹 활동에 대해 중국 배제라고 비판한다. 한·중·일 모두가 참여한 것이 RCEP이지만 일본은 여기에서도 소극적이다. 인도의 참가가 무산되었기 때문에 중국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훨씬 용이해졌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중국 주도의 협정이다. 일본은 RCEP보다는 관세장벽이 훨씬 낮게 설정된 CPTPP를 더 선호하며 지정학적 또는 역사적 이유로 한국과 중국의 참여를 그리 원하지 않는다. 참으로 복잡한 삼각관계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영향이 남아 있어서인지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교토는 아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교토시는 최근 고급 호텔을 많이 유치했다고 한다. 숙박비가 하루에 수백만원씩 하는 고급 호텔이 늘었다. 그만큼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교토 방문을 원한다는 얘기다. 별로 돈은 쓰지 않으면서 혼잡만을 일으키는 사람들보다 여유 있게 지출하면서 유유히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유치한다면 교토시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일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일반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러한 교토시의 전략이 어떻게 보일까? 좀 더 서민들의 관광을 지원하는 정책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교토시 입장은 다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오히려 주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고급화 전략은 이에 기인한다. 가깝지만 너무나 다른 세 나라. 서로의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의 눈으로 상대를 보고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동아시아 지역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