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CEO(효림그룹 회장) 출신으로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등을 거쳐 21대 국회에 입성한 한 의원은 그 누구보다 여성 기업인과 중소기업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고 개선 방향에 대한 비전도 구체적이었다. 전반기 국회에서는 여성 기업을 위한 입법 활동에 주력했다면 후반기 국회에서는 대·중소기업 상생, 중소기업 역량 강화를 위한 활동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여성 기업인이라고 해서 여성 기업인을 위해서만 일하기보다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말하는 한 의원을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여러 차례 “대·중기 간 간극을 메우고 상생 협력을 하게 되면 그것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글로벌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결국 인력과 임금, 지역 불균형 해소라고 그는 생각한다. 또한 제조업 위주로 집중된 산업 구조를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유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한 의원은 강조했다. 그 시발점이 바로 ‘납품단가 연동제’다. 대기업이 여전히 우려하고 있고, 예외 조항도 있지만 한 의원은 대·중기 격차를 해소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란 기대다. 아울러 법인세 인하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야당에서 '초부자 감세'라고 말하지만 결국 법인을 운영하는 다수 중소기업도 혜택을 보게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여성 CEO 출신 국회의원이다. 재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에서도 올해 사장 인사에서 ‘첫 여성 사장’이 탄생했다. ‘유리 천장’이 여전한데 이를 파괴하기 위해 정치권이 할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삼성뿐만 아니라 LG, CJ, 11번가 등 최근 주요 대기업에서 여성 CEO를 발탁하고 있다. 여성 CEO가 많지 않았던 시절부터 기업을 운영해 온 터라 능력 있는 여성들이 잇달아 CEO로 발탁되는 것은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실제로 올해 한국 유리천장지수는 조사 대상인 OECD 29개 국가 중 29위로 10년 연속 최하위다. 또한 최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역시 OECD 36개 회원국 중 30위로 하위권이다. 고령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요즘, 유리천장 파괴는 일모도원(日暮途遠)하다.
다만 전반기 국회에서 제가 발의했던 ‘여성 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작은 성과로 들고 싶다. 여성 기업 실태조사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매해 실태조사가 진행되는 중소기업과 달리 여성 기업 실태조사는 2년 주기로 이루어져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 발의한 법안이다. 통계는 정부가 정책을 만드는 토대로 사용되는 만큼 여성 기업에 대한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하도록 해 정확한 통계에 기반해 맞춤형 정책을 구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법적·제도적 지원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권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또 준비 중인 법안이 있다면. 특히 규제 개혁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전반기에는 여성 기업을 위해 달려왔다면 후반기에는 이를 좀 더 확장해 신생 창업 기업부터 중소·중견기업 등 모든 기업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실제로 규제 개혁 분야에 많은 관심이 있다. 근 20년간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수없이 많은 규제의 벽에 부딪친 탓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 스타트업 4곳 중 1곳이 국내 규제로 인해 해외 이전을 고려한다는 설문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규제 개혁과 관련해 현재 가장 잘못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국회다. 과도하게 많은 법을 만들고 있다. 법 자체가 규제가 되는데 이것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규제 조항이 하나 이상 포함된 의원 발의 규제법률안은 3924건으로, 같은 기간 정부 입법 1748건에 비해 2배 정도 많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가 발의한 법이 일본 의회가 발의한 것보다 80배 많다. 한국 국회의원 수는 300명, 일본은 710명인데 무분별하게 많은 법을 만들고 있다.
특히 정부 입법과 달리 의원입법은 입법 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아 이 규제로 인해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당 규제개혁추진단에서는 의원입법 시 규제 평가를 의무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고 나아가 당론으로도 채택할 계획이다.”
◆납품단가 연동제, 대·중기 상생 시발점···예외조항 악용 장치 마련
-중소기업 숙원이었던 ‘납품단가 연동제’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 간사로서 소회가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 내용을 담은 상생협력법을 대표 발의할 때부터 병합 심사돼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14년 만에 통과된 법이라 감회가 크다. 물론 현재로선 ‘예외 조항’ 등으로 보완해야 할 것들이 많은 법이지만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행하는 것 그 자체로서 선언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대기업 측 반대가 너무나 심했고 이를 법제화하는 것에 대해 부처 내 이견도 많았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 여당 간사로서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가 필요해 속도를 냈다. 다행히 시범 운영을 통해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일부 전환됐고 중소기업벤처부 의지도 강해 부처 이견도 해소하고 당내에서 제기된 쟁점도 해소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납품단가 연동제 필요성을 환기하고 인식을 전환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납품단가 연동제와 관련해 예외 조항에 대한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
“예외 조항의 악용을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해놨다. 위·수탁 기업이 합의하여 납품단가 연동제를 하지 않기로 했을 때 그 취지와 사유를 약정서에 명시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거나 거짓 등 방법으로 예외 조항을 악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했을 시 중기부가 직권조사를 할 수 있다. 또 탈법행위가 적발됐을 시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법체계상 대략 1000만원 수준에서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이보다 5배 상향한 것이다. 그만큼 법의 실효성을 담보했기 때문에 충분히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안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당내 중소기업위원장이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큰 우리나라 경제 상황 중 특히 관심을 두는 사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산업 구조상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 중 99%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 근로자 중 83%가 중소기업 종사자다. 정부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가장 선결 과제는 인력 부족 문제다. 중소기업의 미래 성장기술은 인력, 지역균형과 연결돼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중소기업이라도 의지를 갖고 일할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대기업 쏠림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중소기업 인력 부족 현상이 해결되려면 거시적으로 지역균형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연봉) 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10년 전만 해도 대기업 부장과 중소기업 임원 간 임금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대기업 부장이 회사를 퇴직하고 중기로 넘어와서 임원을 해서 대기업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중기 경쟁력을 키우는 일종의 ‘인력 선순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매해 커지는 대·중기 임금 격차로 인해 이런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임금 격차를 해소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그동안 우리 정부 정책은 공급자(기업) 위주였다. 하지만 이제는 수요자(국민)가 얼마나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다. '로톡' 또는 '직방' 같은 것을 예로 들면 오프라인에서 변호사를 구하거나 집을 구하려면 국민의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하면 쉽고 빠르고 저렴하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아이디어를 산업 구조에 편입하려면 기존 사업자와 반드시 출동이 생긴다. '타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는 수요자 편익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 산업 구조는 중후장대 중심이라 독식할 수 있었고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본 싸움이 아니다. 창의성의 시대다. 새로운 플랫폼을 인정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한전채 발행 한도 확대 안 하면 결국 국민 전기료 부담·산업계 피해 막심
-반면 지난 8일 본회의에서 한전채 발행 한도를 2배에서 최대 6배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여당에 대한 비판이 큰데.
“안타까운 일이다. 당일 본회의에 야당 의원 다수가 반대하거나 기권한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표결 참여가 저조했던 여당 탓을 부정할 수 없고 이와 관련해 많은 의원이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한국전력 적자 규모는 엄청나다. 이미 30조원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연료비 상승에 따라 전기요금을 적정하게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전 정부에서 하지 않은 탓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영향으로 신재생에너지에 과도하게 투자했고, 전력 생산 비용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며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았다. 정승일 한전 사장도 문재인 정부 당시 전기요금 인상을 10차례 요청했지만 그중 단 한 차례만 승인받았다고 국회에서 밝힌 바 있다.
지금이라도 개정 한전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부터 ㎾h(킬로와트시)당 64원씩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올해 19.3원 인상한 것을 포함하면 전기요금이 80%가량 상승하는데 이렇게 급격하게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국가 경제 전반적으로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OECD 국가와 비교해 매우 낮은 편인데 언제까지 싼 요금을 이어갈 수 없다. 국제 에너지 가격 사이트인 글로벌페트롤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h당 126.4원으로 전 세계 148국 중 97번째다. 우리보다 싼 나라는 러시아(102위), 사우디아라비아(116위) 같은 에너지 부국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으로 한정해도 38국 중 37위로 가장 저렴한 편이다.
한전채 발행을 확대하지 않으면 한전은 유동성 문제에 직면해 더 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미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인 만큼 새로운 입법안을 마련해 신속처리대상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위원회 안으로 전체회의 개최 후 바로 통과시켜 법사위로 보내면 연내 개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