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시장 전망보다 둔화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와 매파(통화긴축 선호) 사이 논쟁이 격화되면서 최고금리가 5%로 낮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13일(현지시간) '연준 비공식 대표인'으로 통하는 닉 티미라우스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는 인플레이션 둔화로 인해 기준금리 인상 종료 시점에 대한 연준의 논쟁이 강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전망보다 하락하자 연준의 시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13일 발표된 미국의 11월 CPI는 지난해 동기 대비 7.1% 상승했다. 이는 시장이 전망한 7.3%를 하회한 수치로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다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근원 CPI 상승률도 지난해 동기 대비 6.0% 올라 시장이 예측한 6.1%보다 낮았다. 부동산 등 일부 분야의 물가 상승률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한 수치이다.
뿐만 아니라 내년 2월 FOMC회의에서 가장 유력시 되는 금리 수준은 전날까지 4.75~5.0%였지만, 11월 CPI 발표 이후 4.5~4.75%가 될 확률이 더욱 커졌다. 물가 상승세가 느려지면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이 커진 것이다.
티미라우스 기자는 연준 내부의 비둘기파와 매파 간에 최고금리를 주제로 논쟁이 격화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최대 5.25%까지 인상될 것으로 예고되던 최고금리가 5%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 내부에서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이 계속 둔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높은 금리 인상으로 과도한 실업률 증가와 경기 침체가 도래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흔히 리사 쿡 연준 이사,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 등이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반면 매파진영은 연준의 물가상승 목표치인 2% 달성을 위해서는 긴축정책을 확실하게 펼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토퍼 윌러 연준 이사, 미셸 보우먼 연준 이사,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 등이 매파로 꼽힌다. 과거 예상했던 것보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면서 비둘기파가 전보다는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로이터 통신은 연준이 내년 3월에 금리를 0.25% 인상해 4.75~5%에서 금리 인상을 종결할 가능성이 나온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승리에 확신을 갖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이치뱅크의 매튜 루제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CPI보고서는 파월 의장과 연준에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고 하면서도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충분한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성급함을 경계했다. 탄탄한 노동시장과 소비 지출 상황을 고려하면 연준이 목표로 하는 물가 상승률 2%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바클레이즈의 주식 애널리스트 배뉴 크리시나도 "11월 CPI는 양호하지만, 계속되어야 한다"며 "미국 경제가 물가상승률 2%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을 우려한 분석도 나왔다. 재무관리업체 글랜메드의 제이슨 프라이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은 인플레이션 위험이 가라앉았다고 확신할 수 있기 전까지 긴축 정책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미국 경제는 긴축 정책으로 인한 실질적 위험을 마주하고 있으며 새해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봤다.
한편, 지난 2일 당초 예상을 상회하는 미국의 고용지표가 발표되면서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11월 비농업고용지수는 생각보다 높았고 임금도 예상보다 많이 올랐다. 높은 고용률과 임금 상승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경기 침체가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