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유럽.중동 이탈에 흔들리는 미국의 反中연대

2022-1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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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치솟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고전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미국 민주당은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선전하였다. 비록 하원에서는 소수당으로 전락하였지만, 민주당은 상원에서는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결과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직면한 대외환경은 녹록지 않다. 지난 6월 나토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유럽과 인도태평양을 연결하는 반중 연대의 구축을 시도하였다. 중국은 이 연대를 붕괴시키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대외활동을 중단했던 시진핑 주석은 지난 10월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한 후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듯 30여 개국 정상들과 양자 및 다자 회담을 성사시켰다.
중국의 적극적 외교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당대회 직후인 11월 초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폭스바겐, 바스프, 지멘스, 도이체방크, BMW, 머크 등의 최고경영자가 수행한 이번 방중에서 그는 중국으로부터 에어버스 항공기 140대(약 170억 달러)의 구매 계약을 얻어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12월 1일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 주석과 회담하였다.

EU 최고 지도부의 연이은 방문은 즉흥적 결정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에서 나왔다. 이 계획은 숄츠 총리가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로벌 시대전환: 다극화 시대에 어떻게 냉전을 피할 것인가’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현재 국제질서를 양극체제가 아니라 다극체제로 규정함으로써 EU가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편승하기보다는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중국에 대해서는 인권, 민주주의, 자유·공정무역, 항행의 자유 준수를 촉구했지만, 그는 중국을 고립하거나 협력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하는 신냉전 전략도 거부하였다.

유럽이 유사입장국인 미국에 일방적으로 편승하지 않고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다층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의 피해와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러 유럽 국가는 에너지 수입 비용 증가로 고통받고 있다. 경제제재의 일환으로 값싼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수입을 축소하고 있으므로, 에너지 가격은 전쟁 전의 3∼4배 이상 증가하였다. 에너지 수요가 많아지는 겨울에 가격이 급등할 경우,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취약 계층의 불만은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유럽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이 법안에 들어 있는 수입품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제거되지 않을 경우, EU는 ‘유럽산 구매법’(Buy European Act)을 제정하여 유럽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미국에 경고하였다. 만약 이 법안이 실행되면, 미국은 EU와 무역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번 달 초 미국을 국빈방문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IRA의 개정을 고려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약속이 어떻게 지켜지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유럽은 미국 반도체법안의 시정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에 대한 미국 대중 수출 통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항의하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상무부 산업보안국은 최첨단 반도체(10nm 이하)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뿐만 아니라 범용 반도체(10nm 이상) 생산에 사용되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까지 대중 수출통제 목록에 추가하였다. ASML의 대중 수출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자, 리스제 슈라이네마허 외교통상부 장관은 네덜란드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DUV 노광장비를 중국에 계속 수출할 것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중국의 중동 외교도 미국에게는 큰 골칫거리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7∼10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제1회 중국·아랍 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이사회(GCC)에 참석하고 17개국과 연쇄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7월 리야드를 방문했던 바이든 대통령을 박대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번 달 시진핑 주석을 극진히 환대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 대외정책의 추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보다 중국을 중시하는 근본적 이유는 경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석유를 자급자족하게 된 2010년대 말 이후 대미 수출은 감소세인 반면, 대중 수출은 증가세이다. 그 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수출품인 석유를 중국이 미국보다 더 많이 사고 있다. 이러한 교역의 증진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약 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협정으로 이어졌다.

중동과 중국의 석유 거래 증가는 기축통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석유수출국은 석유를 판매한 대금을 달러로 결제해 왔으며, 외환보유고에도 미국 국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9일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GCC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시 주석은 석유거래의 위안화 결제를 제안하였다. 중국이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이기 때문에 아랍국가들은 이 제안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이 제안이 부분적으로라도 수용되면, 페트로 달러가 감소하고 페트로 위안이 증가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유럽과 중동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당장 없다. 미국은 대러 제재 이후 에너지 상승으로 고통받는 유럽에 저렴한 석유와 가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EU의 보복 위협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부는 IRA를 개정하지 않을 것이다. 임기 중 최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법안을 개정하게 되면 재선의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만 인권과 민주주의의 예외로 인정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국내정치 상황도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보다 훨씬 더 불리하다. 시진핑 주석은 임기를 보장받은 2027년까지 5년 동안 마음껏 정상외교를 할 수 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는 2년밖에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반중 연대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유럽과 중동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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