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이상민 해임안과 집단극단화의 민낯

2022-12-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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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9.11테러(2001년)는 단일 테러로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알카에다가 주도한 9.11테러로 2,977명이 숨졌고 2만5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인들에게는 본토가 처음 공격 받았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뉴욕 맨해튼을 상징하는 쌍둥이 빌딩이 맥없이 무너지는 장면은 아직도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미국 민항기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기는 17분 간격으로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다. 이후 1시간 만에 빌딩은 잿더미로 주저앉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재앙이었다.

이후 공화당 부시 정부는 국토안보부를 창설하고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어 이라크 전쟁까지 내달았다. 명분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알카에다 색출이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일방적 살육이나 다름없는 부끄러운 전쟁이었다. 대량 살상무기를 구실 삼아 전쟁을 일으켰지만 조작된 정보였다. 걸프전이 끝난 뒤 1년도 안 돼 CIA는 이라크 전쟁과 무역 제재 영향으로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고했다. 또 3조 달러 넘는 천문학적 전쟁자금이 투입됐다. 누구도 “아니오”라고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한 참담한 결과였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쓴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보수주의 의제를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며 그때를 회고했다. 당시 ‘테러 척결’과 ‘알카에다 색출’은 무얼 해도 용인되는 도깨비 방망이였다. 1950년대 미국 의회를 지배했던 매카시 열풍과 다르지 않았다. 2002년 미국 의회는 무기력했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마저 부시 정부 정책을 제대로 검증하고 견제하지 못했다. 반 애국자로 몰릴까하여 숨죽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 기본권은 크게 침해됐다. 또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바버라 리 하원의원(민주당)은 ‘테러와 전쟁’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표결에 앞서 동료 의원들에게 집단극단화가 초래할 위험을 경고했다. “나는 군사 행동을 통해서는 미국에 대한 추가 테러 행위를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번 표결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 중 일부는 자제를 외쳐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 중 일부는 한 발자국 물러나 바라보자고 말해야 합니다. 잠깐 멈추어 표결이 가져올 결과를 숙고합시다.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말입니다. 우리 행위가 우리가 개탄하는 악을 닮아가지 않도록 합시다.”

바버라 의원은 집단극단화가 가져올 위험성을 강조했지만 무시됐다. 당시 바버라와 같은 의원이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어렵지만 이라크 참상은 막을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미국 의회는 ‘이슬람은 악’이라는 집단사고에 매몰된 나머지 덮어놓고 찬성표를 던졌다. 그 결과 무고한 100만 명이 숨졌다. 그들이 자신들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면 있을 수 없는 표결이었다. 바버라 의원 덕분에 미국 의회는 ‘하원 만장일치’라는 부끄러운 역사는 면했다. 하지만 죄 없는 생명을 앗아간 책임 일부라는 오명은 남았다.

어제(11일) 민주당이 주도한 거야(巨野)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안을 강행 처리했다. 재석 의원 18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82명, 무효 1명으로 가결됐다. 이날 표결에는 민주당 169명 전원과 정의당 6명 전원, 기본소득당 1명, 국민의힘 1명, 무소속 6명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은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탈 표는 한 명도 없었다.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바버라 의원을 떠올린 건 이 때문이다. 이 장관 해임 안은 실익도 없고 명분도 없다. 그럼에도 일사불란하게 처리한 민주당을 보노라면 집단극단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달 23일 국민의힘과 줄다리기 끝에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에 어렵게 합의했다.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앞세워 여당을 압박했다. 그런데 가까스로 합의한 국정조사를 18일 만에 스스로 걷어찼다. 핵심 증인인 이 장관을 해임함으로써 내용 없는 국정조사로 전락시켰다. 앞뒤가 맞지 않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구나 장관 해임을 처리하기 위해 일요일 본회의를 연 것도 이례적이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강행 처리한 속셈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까지 긴박한 사안이었는지 동의하기 어려울뿐더러, 또한 해임 안 의결이 가져올 후폭풍을 예상하면서도 밀어붙인 의도가 궁금하다.

대통령이 해임 안을 거부하면 탄핵안을 발의한다는 게 민주당 복안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해임 안 가결 이후 “이 장관 탄핵은 윤 대통령 입장이 나온 뒤 판단하겠다.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 불같이 일어나 탄핵안을 통과시켜 국민 무서운 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 장관 해임 안을 강행 처리한 속내는 이재명 대표 수사에 쏠린 여론을 돌리기 위한 목적임을 자인한 셈이다. 여당은 국정조사 위원 전원(7명) 사퇴 의사를 밝혔다. 어렵게 타결된 국정조사가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파국을 맞게 됐다. 민주당이 파행을 의도했던 건 아닐까 싶다.

레이코프 교수는 “악한 사람들은 악한 행동을 한다. 더 이상 설명은 필요치 않다. 악의 적은 선이다. 우리의 적이 악하다면 우리는 선을 타고났다. 선은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가 전쟁터에서 악에 대항해 하는 모든 일은 선하다”는 프레임에 빠져 상대를 악마화한다고 일갈했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 독주가 이러한 지적에서 자유로운지 의문이다. 알카에다 색출 명분에 휩쓸려 이라크 전쟁을 승인한 미국 의회나 윤석열 정부를 악마화한 채 실익도 명분도 없는 장관 해임 안을 강행 처리한 더불민주당이나 집단 극단화 오류에 빠진 나머지 편협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레이코프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보복이 아니라 정의다. 이해와 신중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그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말로 진영논리와 집단 극단화를 경계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민주당이 아니다”는 비판을 새겨들을 아량과 이성이 살아 있는지 묻고 싶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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