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미학] 서산의 3味 길고 진한 여운에 빠지다

2022-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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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우럭을 담백하게 끓인 우럭젓국

다른 곳에선 맛볼수 없는 독특함 자랑

남은 겟국에 묵은지 넣고 끓인 게국지

김으로 싼 하얀 쌀밥에 어리굴젓 한점

해안가 추운 겨울 버티게 해주는 별미

제철 굴로 만든 굴무침 [사진=기수정 기자]

날이 시리다. 칼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그저 집안에서 밀린 독서나 하면 딱 좋은 날씨지만, 역마가 끼었는지 어느새 집 밖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추운 날씨를 뚫고 떠나는 겨울 여행이니 이왕이면 입맛 돋우는 제철 음식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충남 서산에서 겨울 별미 삼총사를 맛봤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미미(美味)'다. 과연 별미의 여운은 길고, 깊었다. 집 나간 며느리는 돌아오지 않을지 몰라도, 집 나간 입맛은 금세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쌀뜨물에 우럭포와 새우젓 등을 활용해 조리한 우럭젓국은 서산 별미다. [사진=기수정 기자]

◆뜨끈한 국물 한 숟가락에 눈이 '번쩍'···우럭젓국
서산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럭젓국이다. 서해안 태안반도와 가로림만에서는 지극히 토속적인 음식으로 손꼽힌다. 다른 곳에서는 먹어보지 못하는, 독특한 맛 또한 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사실 우럭젓국은 서산 사람들에게는 흔한 음식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퍽 낯선 음식이다. 이름 그대로 '우럭과 젓갈을 넣고 끓인 국' 정도라고 어렴풋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생선을 넣어 끓인 국이라고 하니 혹자는 '비린 맛이 강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뽀얀 국물과 꾸덕꾸덕 마른 우럭이 어우러져 감칠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지역 별미가 바로 우럭젓국이다. 칼칼한 매운탕이 아니다. 북엇국에 가까울 만큼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우럭젓국의 주 식재료는 우럭포다. 이 우럭포는 서산의 명물이자 밥상 위 단골손님으로 손꼽히는 식재료다.

서산 일대에서는 잡은 우럭 내장을 제거하고 반으로 갈라 소금 간을 한다. 그러고는 햇살과 바람에 말리면 쫀득한 식감의 우럭포가 완성된다.

과거 서산 지역에선 제사상에 우럭포를 올렸는데, 제사상에 올랐던 우럭포를 활용해 국을 끓여 먹던 것이 우럭젓국의 시초라고 한다.

​말린 생선을 사용하니 식감은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고 국물에서 비릿한 맛도 없다. 우럭젓국은 국물 맛이 담백해 남녀노소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다. 포슬포슬한 우럭 살을 입 안에 넣으면 고소한 맛이 퍼진다.

우럭젓국의 재료는 간단하다. 우럭포와 새우젓, 무, 파, 다진 마늘 정도만 있으면 된다. 두부를 넣어 푸짐함을 더하고, 마른 고추를 넣어 칼칼함을 살린다. 생수보다는 쌀뜨물을 활용해 국을 끓이면 풍미가 더 진하다. 

서산에서는 우럭젓국과 꽃게장 등 서산 별미를 아우르는 한상차림 전문점이 곳곳에 있다. 가게에 따라 게국지, 어리굴젓, 감태 등 서산의 또 다른 별미를 함께 맛볼 수 있다. 
 

김장 후 남은 배추 겉잎과 무 시래기를 호박, 게 등과 버무려 삭힌 후 끓여낸 게국지 [사진=기수정 기자]

◆허드레 채소와 게 국물의 만남···'게국지'

우럭젓국과 함께 꼭 맛봐야 할 것이 바로 '게국지'다. 우럭젓국만큼 생소한 이름인 게국지는 일반적으로 '남은 겟국에 묵은김치를 넣고 찌개로 끓여낸 음식'으로, 이 게국지 역시 지역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식재료를 활용한 서산 음식이다.

한국향토문화대전에 따르면, 게국지는 충남 서산의 일부 지역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음식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김장이 끝난 뒤 남는 배추 겉잎, 무 시래기 등을 고추, 마늘, 청둥호박(늙은호박)과 함께 버무리고, 이를 겟국에다 섞어 한 달가량 숙성시킨 음식이다. 잘 삭힌 게국지는 겟국과 채소가 어우러지면서 감칠맛이 도는 개운한 찌개로 재탄생한다. 

과거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충남 해안가 사람들이 마땅히 먹을 것이 없던 겨울부터 봄까지의 밥상을 책임졌다고 한다. 지역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식재료를 재활용해 허기를 달랬던 '서민 음식'인 것이다.

게국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맛볼 수 있는 '게 찌개'와는 그 맛이 확연히 다르다. 전체적으로 시원하게 짭조름한 김칫국 맛이 강하면서도 개운함과 감칠맛의 깊이는 상당하다. 묵은김치와 파, 무 시래기, 겟국만 섞였는데도 맛의 풍미가 퍽 깊다. 
 

간월도에서 맛본 영양굴밥 [사진=기수정 기자]

◆짭쪼름한 굴로 지은 보양식 한 상

이맘때 제철 별미 '굴'이 빠질 수 없다.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은 생굴 자체만으로도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지만, 굴전과 굴무침, 굴 물회 등 다양한 요리로도 맛볼 수 있다. 

이맘때 서산에서는 굴을 활용한 음식을 흔하게 마주할 수 있다. 

조선 태종 때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어리굴젓이 대표적이다. 간장게장과 함께 '밥도둑'으로 불린다.

김 한 장에 갓 지은 하얀 쌀밥과 어리굴젓 한 점을 얹어 먹는 맛이 꿀맛이다. 

굴을 넣은 '영양굴밥'은 간월도의 명물로 손꼽힌다. 천수만 간척지에서 수확한 쌀에 밤과 호두, 은행, 대추 등을 넣고 알이 통통하게 오른 굴을 듬뿍 넣어 짓는다.

완성된 굴밥을 그대로 맛봐도 좋지만, 그릇에 덜어낸 밥을 김가루, 참기름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맛이 그만이다. 굴을 잘 먹지 못하는 이들도 절로 수저를 들게 하는 최고 별미다.

달래장은 꼭 넣어 먹기를 추천한다. 달래를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을 살짝 떨어뜨린 달래간장 한 숟가락을 더하면 입안에 향긋함이 가득 퍼진다.

 

굴전. 달래장에 찍어 먹으면 맛이 더 좋다.[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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