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백범 김구 선생 기념 사업회는 경찰청과 함께 전 주한 미국 대사 캐슬린 스티븐스를 제1회 백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 시상했다. 경찰청은 초대 경무국장을 지낸 김구 선생을 기리는 사업을 수행했고,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사회에 백범의 사상과 업적을 알리는 공헌을 했기 때문이었다. 대사는 특히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 내용을 미국 여론 지도층에 소개해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발현된 우리의 민주의식을 널리 알린 공헌을 인정받았다.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며 대사 시절 자전거를 타고 한국 전역을 누비며 한국인과 소통한 스티븐스 대사의 한국 사랑이 다시 한번 인정받는 계기였다.
스티븐스 대사의 이러한 한국 사랑은 어떻게 생겨 났을까? 그 시작은 그녀가 대학을 갓 졸업해 21세이던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광활한 중서부 몬태나 시골에서 자란 그녀는 더 넓은 바깥 세상을 보기를 원했다. 또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를 원했다. 마침 이러한 바람을 채워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그것은 미국 정부가 운영하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었다. 1961년 젊은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는 ‘뉴 프런티어’ 정신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에 미국의 젊은이들을 보내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스티븐스 대사는 그 당시 아직 저개발국이던 생소한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딛고 그 후 2년 동안 충청남도 예산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했다. 풍요로운 미국 생활을 뒤로 하고 가난했던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키워나갔다.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정치적으로 암담하던 한국이었지만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며 한국의 발전을 응원했다.
78년 외교관 시험에 합격한 후 83년 대사관 정무관으로 한국에 다시 오게 된 스티븐스 대사는 당시 확산되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응원했고 2000년대 초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수석 부차관보 시절에는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2008년 한국의 대사로 부임하면서 그녀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놀랍게 발전된 한국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고 자신이 20대 시절 가졌던 한국에 대한 희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3년간 대사 재직 기간에는 성숙하게 변화한 한·미 관계의 틀에서 양국 간의 협력과 우애를 확산하기 위한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한국 사회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소통하고자 했고 양국 국민 간 이해를 넓히는 공공외교에 주력했다.
또한 이들 중 많은 인사들은 봉사단 임무가 끝난 후 귀국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에서 지도층 인사가 되었는데 젊은 시절 봉사단원으로 키운 꿈을 바탕으로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은 물론, 저명한 학자, 사회운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후에 미국과 자신이 파견되었던 국가 간의 협력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한국 출신 중에는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드 매켄 전 교수 등이 있는데 이들은 미국 학계에서 한국의 역사, 문학 등 한국학 확산에 공헌을 했다. 한국에 정착했던 고 피터 바돌로뮤씨는 한옥 지킴이를 자처하며 한국 문화를 보존하고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미국 평화봉사단의 이러한 공공외교 활동이 미국의 해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소트프 파워를 증진한다는 점은 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도국 20개국에서의 활동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봉사단이 활동한 이들 국가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긍정적으로 변했고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 공신력 있는 퓨리서치(Pew Research) 조사에 따르면 한 명의 평화 봉사단원이 증가할 때마다 이들 개발 도상국가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favorability)는 0.12포인트씩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