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관치금융 망령] "정권 바뀌니 여지없이 '낙하산'"…반복되는 금융권 흑역사

2022-11-1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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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DB]

일반 대기업처럼 주인(오너)이 없는 대형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은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낙하산 인선'으로 몸살을 앓았던 경험이 많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의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권 인사)’가 대표적 사례다. 금융권은 낙하산 인사의 수장 취임으로 조직 내 갈등은 물론,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와 정책 동원 등 각종 부작용을 겪었다. 금융업계의 자율경영과 시장경제 회복에 방점을 두겠다고 천명했던 윤석열 정부 역시 ‘낙하산’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과거 악몽이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당국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관치금융의 방식은 바로 금융공기업이나 국책은행에 친정부 인사나 입맛에 맞는 관료 출신 수장을 내려보내는 것이다. 국책은행 중심의 대표적 관치금융 사례는 산업은행이다.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 방침에 따라 기타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된 산업은행은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협의회)를 통한 관치압박으로 수조원의 국민 혈세를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했다가 그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는 등 역대급 흑역사를 만들어냈다.

또 다른 관치금융 사례로 KB금융과 우리금융이 있다. KB금융의 경우, 과거 초대 회장인 황영기 회장을 비롯해 어윤대 회장, 임영록 회장까지 낙하산 인사가 이어졌다. 이들은 임기 동안 사외이사 등과 마찰을 빚었는데, 이 과정에서 1대 황영기 회장과 3대 임영록 회장은 임기 1년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잦은 수장 교체와 단기 성과주의가 금융회사의 성장을 가로막으면서 지주사와 은행도 경쟁에서 뒤처졌다. KB금융 수장 가운데 임기를 모두 채우고 연임에 성공한 사례는 현 윤종규 회장이 처음이다. 당시 상황을 두고 세간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일컬을 정도다. 올해 초 완전민영화가 이뤄진 우리금융은 2001년 지주사 출범 후 20년간 6차례에 걸쳐 수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이처럼 무분별한 낙하산 인선에 따른 부작용이 확산되자 금융당국은 2014년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에 대해 내부 승진자나 금융업권 전문 경영인이 전담할 수 있도록 낙하산 인사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15년 3월 취임한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금융권 인사 개입 논란에 대해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 원칙은 민간에서 자기 의지로 전문성 있는 사람을 뽑아 쓰는 것”이라며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고 외부기관의 부적절한 인사 압력도 차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러한 다짐을 뒤로 하고 '관치금융' 유혹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성을 앞세워 금융산업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요구하는 금융권 수장보다는 정부의 요구에 토를 달지 않는 ‘말 잘 듣는’ 인사를 선임하는 게 정부 입장에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정권 창출 공신들에 대한 '보은인사'도 관치금융의 대표 사례다. 

이 같은 관치금융의 폐해는 '금융의 도구화'로 금융산업 전반과 금융지원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

실제 임기 전부터 '낙하산 인사'로 언급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 갖은 내홍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현 정부의 금융권 첫 인사였던 산은 회장 인선에서 보듯, 정권 입맛에 맞는 낙하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권과 모피아의 낙하산 투하는 금융위기를 가속화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처럼 금융권이 관치나 낙하산 등 외풍에 취약할수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금융권 CEO의 셀프연임 시도 등은 경계해야겠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친 민간 금융회사의 연임조차 가로막고 보는 부분 또한 바뀔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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