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in Trend] 그림 그리는 AI, 콘텐츠 업계 '판' 바꾼다

2022-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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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만드는 AI, 글·그림 등 창작 영역에 진출 본격화

저작권 침해는 여전히 우려...학습용 작품 판매 시장 기대

AI가 그리고 인간이 마무리...협업 통한 작품 활동도 가능

노벨 AI에 몽환적인, 고풍스러운, 꽃, 드레스, 달, 수평선 등 다양한 주제의 키워드를 넣고 생성한 이미지.노벨 AI는 사용자가 입력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만화풍 그림을 자동으로 그려주는 AI다. [사진=노벨 AI]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는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창작 활동만큼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인식돼, AI가 침범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창작 영역에도 AI가 손을 뻗기 시작했다. 특히 그림 그리는 AI는 장면 구성이나 광원 효과 등 이미 현업 작가 수준의 작품을 만든다고 평가받는다.

최근 관련 업계에서 주목받는 AI 서비스는 지난 10월 등장한 '노벨 AI(Novel AI)' 이미지 제너레이터다. 노벨 AI는 스토리텔링에 특화한 AI다. 사용자가 특정 문장을 입력하면 이를 배경으로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준다. 대화를 통해 게임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TRPG(테이블톱 RPG)의 진행자처럼 사용자가 제시한 세계관과 소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지난달에는 키워드 기반 이미지 생성 기능도 도입했다. 독일 뮌헨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와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솔루션 기업 런웨이(Runway)가 함께 개발한 기술이다.

사용자가 직접 그린 간단한 스케치와 함께 미소, 갈색머리, 인물 등 키워드를 넣으면 만화풍의 이미지를 자동으로 만든다. 사용자가 직접 사진이나 그림 파일을 올리고, 이와 유사한 형태로 일러스트를 생성할 수도 있다.

현재 노벨 AI는 클라우드 기반 구독 서비스로 제공 중이며, 이미지를 생성할 때는 구독 시 매월 받을 수 있는 유료 재화가 소모된다. 사용자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만들기까지 반복 생성해야 하고, 이때마다 재화(약 14원)가 든다. 하지만 사용자 만족도는 높다.

이미 국내외에서는 노벨 AI 가입 방법은 물론, 원하는 형태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생성하는 방법이나 명령어 사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인간이 3시간 걸려 작업해야 할 그림을 몇 초 이내에 만들 수 있으며, 사용자가 원하는 장면을 즉시 그려주는 높은 자유도 덕분에 활용 방법도 다양하다.

◆의뢰받아 작업하는 프리랜서 작가, 설 자리 줄어들까?
 

여름, 호수, 휴식, 산들바람 등의 키워드를 통해 노벨 AI가 생성한 그림. [사진=노벨 AI]

노벨 AI 이미지 제너레이터가 등장한 이후 사용자들은 '커미션 작가'가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커미션 작가는 일정 대가를 받고 구매자가 요청한 형태의 그림을 그려주는 프리랜서를 말한다.

커뮤니티 사이트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에서는 이러한 의뢰가 종종 이뤄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에 원하는 의상을 입히고 동작이나 소품도 자유롭게 의뢰할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있는 캐릭터 외에도 자신을 형상화한 캐릭터도 만들 수 있어, 이를 SNS 프로필 사진이나 얼굴을 비공개하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노벨 AI 이미지 제너레이터와 거의 동일하다. 키워드를 통해 이미지에 들어갈 요소를 직접 의뢰할 수 있으며, 간단한 스케치로 대략적인 형태도 제시할 수 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의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러스트레이터 등 관련 업계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특히 화풍을 학습할 수 있어, 더 이상 특정 작가에게 비용을 지불하며 작품을 의뢰할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작가가 수년간 작업하며 만들어온 기술을 AI가 순식간에 복제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노벨AI가 등장한 이후 AI가 그린 그림을 마치 자신이 그린 것처럼 속여 판매하려는 사람도 등장했다. AI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밝히면서 기존 커미션 작가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작품을 만들어 주겠다는 프리랜서도 있다. 실력 있는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작가 역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에 AI가 스며들면서 시장 구조가 바뀔 가능성도 커졌다.

프로 작가도 그림 AI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표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만화가로 활동하는 김락희 작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기존 작가들이 가장 기분 나빠하는 점이 창작 욕구에 대한 침해"라며 "앞으로 AI로 작업을 하려는 사람은 가치관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판도 바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9월 콜로라도주 박람회 미술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그림 AI 미드저니를 통해 제작됐다. [사진=제이슨 앨런(Jason M. Allen) 페이스북 갈무리]

실제로 올해 9월 미국에서 열린 미술전에서 AI가 그린 그림이 우승을 차지하며 논란이 됐다. 이 작품을 출품한 작가는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그림 AI를 활용했다. 미드저니 역시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AI다. 일각에서는 붓질 한번 하지 않고 미술전에서 우승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AI를 사용한 점을 분명히 밝혔고 작품을 만드는 데 쓰인 텍스트를 창작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물론 AI가 만드는 그림이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가령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그려달라고 하면 살아있는 연어가 아닌 연어 필레(저민 살코기)를 그리기도 한다. 특히 손과 도구 사용에 대한 표현이 부족하다. 예를 들면 면 요리를 먹을 때 젓가락을 옆에 두고 손으로 집어먹는 식이다. AI가 단순히 그림을 통해 반복 학습할 경우 손이나 도구 사용 방법도 그려낼 수 있지만, 해당 요소의 의미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처럼 사고하는 범용 AI가 등장하기 전까지 무리일 것으로 보인다.

◆AI와 협업하는 인간...학습용 작품 판매 등 신규 산업도 기대
 

우주, 천체, 달 등을 키워드로 AI가 생성한 이미지. [사진=노벨 AI]

저작권 문제는 여전히 창작 AI가 넘어야 할 장벽으로 남는다. 화풍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기존 작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만든 작품 역시 기존 작가의 작품과 유사한 것이 생성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가와 AI가 협업하거나 작품 학습용 데이터에 대한 저작권을 판매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시장도 나올 수 있다. 단순 콘텐츠 판매를 넘어 새로운 형태로 자산이 거래되는 셈이다.

최근 CJ ENM으로부터 투자받은 AI 작곡 기업 포자랩스는 작곡가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이를 통해 AI를 학습시킨다. 학습된 AI는 음악 장르, 분위기, 악기 등 사용자 선택에 따라 이에 맞는 음악을 자동으로 생성한다. 이렇게 만든 음악은 방송사는 물론, 음반사나 게임사 등 음악이 필요한 각종 콘텐츠 산업에서 쓰인다.

CJ ENM 측은 AI 작곡을 통해 방송 제작의 편의성과 콘텐츠 글로벌 유통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사람이 3~4일 걸려 만든 것과 차이가 없는 높은 수준의 음원을 5분 만에 작곡해 제작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저작권 문제 역시 없기 때문에 편곡을 통해 다양한 활용도 가능하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기존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AI 에어트(AiRT)를 선보였다. 이 AI는 수묵화 작가인 류재춘 화백과 협업했다.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색상이나 한지 특유의 색감 등을 학습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실제 작품과 세계관이 이어지는 연작을 디지털로 제작했다.

만화 등 콘텐츠 시장에서도 작업 효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인건비 등의 문제로 만들기 어려웠던 장편 작업에 AI를 접목하면 작품 제작 기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생성한 그림에서 어색한 부분을 작가가 보완하거나, 복잡한 배경 모습을 AI가 그리는 식이다.

네이버의 경우 웹툰 AI 페인터를 선보인 바 있다. 직접 그린 스케치를 올리고, 채색에 사용할 주요 색상을 고른 뒤 클릭하면 자연스러운 얼굴, 머리, 옷 등 각 부분에 맞춰 자연스럽게 색을 입힌다.

이러한 창작 AI는 창작활동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자유로움을 준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창작활동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전문가의 필요성을 줄이는 등 업계의 전반적인 실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AI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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