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과징금 1조 이상···‘수출 효자’도 못 피했다
그동안 국내 방위산업은 국가계약법 적용으로 업체들마다 갖가지 고충을 떠안았다. 방산업체가 민간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무기를 판매하기 때문에 국가계약법은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무기 개발 과정에서 기술 변경이나 성능 보완이 이뤄져 납품이 늦춰지면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납기 지연 지체상금(지체 보상금) 부과액은 무기체계 특성과 무관하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하루 지연에만 계약금액 0.075%를 산정하고 있다. 1년이면 계약금액의 27%에 달하는 돈을 지체상금으로 토해내야 하는 구조다.
방사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1~2020년) 동안 10억원 이상 지체상금을 부여한 사례는 65건으로 1조1458억원에 달한다. 최근 수출 잭팟을 터뜨린 ‘K2 전차’는 총사업비 9000억원에서 1058억원을,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은 총사업비 9548억원에서 958억원을,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은 총사업비 9700억원에서 160억원을 지체상금으로 각각 토해냈다.
대한항공은 총사업비 4409억원인 ‘P-3C 해상초계기’ 1차 성능개량 사업에 참여했다가 사업 완료 기한을 1393일 지연했다며 방사청 측에서 지체상금 670억원과 이자 56억원 등 총 726억원을 부과받았다.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지난해 ‘수리온’ 헬기 비행훈련 시뮬레이터 사업에서 제안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했다며 방사청에서 6개월간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부정당업체 제재’를 부과받았다. KAI는 기재 내용 오류는 허위 기재가 아닌 단순 실수에 불과하다며 6개월간 입찰 참여 제한이 과도하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달 5일에는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고자 군이 쏜 ‘현무-2C’ 지대지 미사일이 발사 직후 추락하는 낙탄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추락 원인을 방산 비리로 몰아가는 분위기이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방위산업 그늘을 고스란히 반영한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해외에서는 방산산업에 대한 징벌적 규제를 최대한 완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F-35’ 스텔스 개발 일정이 6년이나 늦어지고 사업비용도 60% 이상 증가했음에도 개발사인 록히드마틴에 지체상금을 물지 않았다. 유럽도 ‘유로파이터’ 전투기 사업이 8년이나 늦어졌지만 개발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최첨단 무기 체계 구축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지체상금 외에도 사업타당성조사를 비롯한 부정당 업체 제재 등 징벌적 규제 해소에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당 업체 제재로 지정되면 입찰참가 제한부터 기존 수주 사업에 대한 착수금·중도금 지급 제한, 가산금 부과 등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인 가혹한 처분이 뒤따른다. 이러한 폐단을 계속 묵과한다면 최근 K-방산 수출 성과가 우크라이나 특수로 인한 반짝 현상에 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기 개발은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고 있어 개발 완료까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면서 “지금의 방위산업 규제는 최첨단 무기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과거 유물에 불과하며, 방산 비리 프레임에 갇힌 측면이 크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법 개정과 수출 중심의 전략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