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속에서 한국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격화되는 미·중 갈등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내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11일(현지시간) 미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공장에 한해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1년 유예키로 하며 관련 업계가 당장은 한시름 놨다. 하지만 한시적인 조치인 만큼 리스크는 여전하다.
앞서 지난 7일 미 상무부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견제 차원에서 미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생산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기업들은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에 발맞추기 위해 분주하다. 로이터통신·CNN 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엔솔)과 일본의 완성차업체 혼다는 오하이오주 주도 콜럼버스 남서쪽 64km 떨어진 파예트 카운티에 공장 건설을 최종 확정지었다. 앞서 지난 8월 이들 회사는 합작 법인 형식으로 총 44억 달러(6조 3000억원)를 투자해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위치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공장은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2025년부터 리튬 이온 배터리의 양산을 시작해 연간 약 40GWh(기가와트시)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혼다 자동차에 공급돼 북미에서 조립된다.
LG엔솔을 비롯해 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긴박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문이다. 지난 8월부터 시행된 IRA는 북미에서 제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기차 1대 구매 시 최대 7500 달러(약 1070만원)까지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만큼 적은 금액이 아니다. 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관련 업체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미국이 중간선거를 앞둔 점도 미국 내 공장 건설 추진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치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IRA를 지지율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날도 바이든 대통령은 LG엔솔과 혼다의 투자가 확정되자 즉각 성명을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혼다와 LG가 전기 자동차 배터리 제조 및 공장 개조에 주 50억 달러 이상 투자를 약속한 것은 미국과 오하이오의 또 다른 승리"라고 밝히며 성과를 과시했다. 업계 입장에서 이 흐름을 활용해야 할 유인이 커지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고민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 6일 IRA의 공청회를 추진하겠다고 고시하는 등 세부 입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등 중국 견제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미 상무부가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를 발표한 이후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조치로 양국(미국·중국)이 화해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