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코스로 신청했는데 걷다 보니 욕심 나서 풀코스로 다 걷고 있어요."
아주경제신문이 주최한 '2022 청와대·서울 5대 궁궐 트레킹'이 열린 지난 1일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 만난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시민들은 트레킹 행사에서 청와대와 5대 궁궐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걷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마스크로도 숨길 수 없는 기대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나 마스크로는 참가자들의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날 벤치에 앉아 트레킹 코스를 살펴보던 이모씨(30)는 "가을 날씨가 선선해 걷기 딱 좋은 날"이라며 "친구들과 오손도손 수다 떨면서 고궁과 청와대를 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챙겨온 도시락을 나눠 먹던 안모씨(27)는 "초등학교 이후로 고궁을 찾은 건 처음"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행사는 풀코스(13㎞)와 하프코스(7㎞)로 구성됐다. 풀코스는 경희궁 숭정전을 시작으로 광화문, 경복궁 근정전, 청와대, 창덕궁 돈화문,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경춘전, 덕수궁 중화전을 돌아 다시 경희궁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하프코스는 청와대까지는 풀코스와 같지만 창덕궁과 창경궁을 가지 않고 바로 덕수궁 중화전을 거쳐 시작 지점으로 회귀하는 프로그램이다. 각각 3시간, 1시간 30분 코스다.
아침 일찍 모인 참가자들은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트레킹 시작 지점인 경희궁 숭정문 앞을 지나며 곳곳을 사진으로 담기 바빴다. 이날 경희궁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김모씨(30·여)는 "서울 살면서 늘 고궁이 가까이에 있었지만 평소 5대 궁궐을 한꺼번에 걸을 일은 없었다"며 "오늘 풀코스를 완주하며 역사적 의미도 되짚고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궁서 출발···궁궐 아름다움 만끽
참가자들이 시작 지점인 경희궁을 나서며 본격적으로 트레킹이 시작됐다. 경희궁 흥화문을 나선 참가자들은 새문안로를 따라 걸으며 보행자 공간으로 탈바꿈한 광화문 광장을 지났다. 몇 차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있었고, 광화문 앞은 월대 복원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곳곳에 배치된 안전요원 덕분에 안전사고 없이 한국 고궁의 대명사인 경복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이곳 광화문에서 두 번째 스탬프를 찍고 경복궁 근정전으로 향했다.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에 들어선 참가자들은 고궁의 정취에 흠뻑 젖었다. 광화문을 등지고 흥례문, 근정문을 거치자 과거 주요 궁중 행사와 외국 사신을 접객하던 장소였던 근정전에 다다랐다. 참가자들은 좌우 대칭으로 왕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설계된 궁의 구조 속을 걸으며 궁궐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 이후 참가자들은 근정전에서 왼편으로 이동해 경회루를 지났다. 경회루, 향원정 등 아름다운 후원에서 참가자들은 자주 발걸음을 멈췄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소리가 고궁에 울렸다.
경회루에서 만난 중국인 참가자 조모씨(19)는 "유학생 모임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신청했다"며 "경복궁 안까지 들어온 것은 처음인데, 연못이 가장 인상 깊고 그 밖에도 볼 게 많아 놀랍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김모씨(21)는 "선선한 날씨와 환한 햇빛이 경복궁 풍경과 잘 어울린다"며 다음 장소가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소박한 내부에 놀랐죠"···방문객들, 靑 개방 환영
고궁의 상징 경복궁을 뒤로한 채 신무문을 나서자 파란 청와대 기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청와대 입구는 유독 붐볐다. 트레킹 인증 도장을 찍기 위해 늘어선 대기줄도 길었다. 입장 전부터 청와대 풍경을 담으려 카메라를 꺼내든 이들도 많았다. 공책에 빼곡히 적어온 청와대 관련 조사 내용을 부모님 앞에서 자랑스럽게 읊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이번 행사 코스에서 청와대가 포함된 것을 특히 장점으로 꼽았다. 시민들은 권력의 벽이 허물어진 청와대를 걸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서울 강동구에서 오전 6시께 나섰다는 신혼부부 최모씨(33·여)와 박모씨(35)는 "이번 행사에 고궁뿐 아니라 청와대가 코스로 있기에 얼른 신청했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청와대가 아직 대통령 집무실로 쓰였다면 오늘 이런 행사는 없었을 것”이라며 “시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에서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코스에도 만족하고 편한 트레킹 차림으로 청와대까지 돌아볼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다음에 또 행사가 열리면 부모님까지 모시고 오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학 동문들끼리 트레킹에 참여한 홍모씨(65)도 "청와대가 개방된 덕분에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된) 훌륭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을 와서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청와대를 둘러보던 참가자들은 호화로울 것이란 예상과 달리 소박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관저를 돌던 한 시민은 "청와대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해서 인상 깊다"며 "과거 권력자들의 공간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어 뇌리에 남았다"고 말했다.
풀코스로 트레킹을 완주한 이모씨(27)는 "건강도 챙기고 평소 보기 힘든 청와대와 궁궐을 모두 볼 수 있어 좋은 추억을 쌓았다"며 "지인에게 추천해 내년에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프코스를 돌고온 김모씨(29)는 "다른 트레킹처럼 그냥 걷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고궁과 청와대를 둘러보며 역사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전했다.
"걷는 재미, 건강까지···내년에 또 올래요"
5대 궁궐과 청와대의 매력뿐만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며 이날 행사를 참여한 시민들도 많았다. 운동복 차림으로 혼자 이곳을 찾은 전모씨(51)는 "평소 걷기의 중요성을 느끼며 서울에서 열린 걷기 행사에 거의 다 참여해봤는데, 이번 행사는 특히 청와대와 고궁이 다 포함돼 있어 뜻깊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회사 선후배 세 명과 함께 찾은 문모씨(54)는 "평소에도 건강을 생각해 달리기 동호회를 함께해왔는데 관련 행사가 없나 찾던 중 이번 행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사 진행 내내 참가자들 안전에 주의를 기울인 점도 참가자들에게 호평을 얻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트레킹 행사지만 안전요원을 50여 명이나 배치했다. 안전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고 참가자들에게 트레킹 안내를 돕기 위해서다. 앰뷸런스 두 대를 포함해 의료진 여섯 명을 대기시키고 참가자들에게 안전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도 같은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