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한 지 150여 일 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야당 의원 인사들의 질책과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의원들은 국민을 대표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의 비난 공세를 보면 모욕감과 분노가 절로 생긴다. 세계 경제 10위, 군사력 10위, 문화 강국의 대한민국 국민 수준을 이들이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발언은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을 연상케 한다. 이들이 내뱉는 비판은 ‘우물 안의 개구리’식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필자가 대통령과 정부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눈에 대통령과 외교당국의 연속되는 실수는 눈엣가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외교성과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상승시키기보다 되레 이를 잠식하는 역효과만 자아낸다. 그럼에도 취임한 지 약 150일 동안 대통령이 많은 외교 일정을 소화하며 일정 수준의 결실은 올렸다. 5월의 한·미정상회담, 그 다음 달의 나토 정상회의, 9월의 영국 여왕 조문, 유엔 총회 연설, 캐나다 방문 등에서의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북한 문제를 포함해 수많은 현안에서 미국과 엇박자를 보이면서 상실한 신뢰를 신속히 회복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 정부는 선동 정치를 하면서 한·일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해 대통령은 외교적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섰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야당은 자신의 책임을 생각하며 자숙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새로이 추진하는 일련의 전략구상에서 우리의 국익 지분이 확보되는 외교적 결실도 부인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혀달라는 국민적 요구도 나토 정상회의에서 그 초석이 마련되었다. 이렇듯 취임 첫 150여 일 동안 윤 대통령 외교의 첫걸음은 우리의 외교적 입지 기반을 닦은 것만으로도 그 노력을 인정할 수 있다.
물론 애석한 점도 많다. 이는 그의 전임자들이 취임 첫해에 외교성과를 내면서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윤 대통령 자신은 정작 그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해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더 강력하게, 노골적으로 지지했으면 어땠을까.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지난 8월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의 기회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영국 여왕의 조문 외교와 관련해서 국민도 납득하지 못할 시간 일정을 왜 그렇게 성급히 발표해 비판을 자초했을까. 1분도 안 되는 짧은 미국 대통령과의 조우를 조우라 하지 못하고 굳이 회담이라고 주장했어야 하나. 뉴욕에서 일본 정상과의 회담이 마치 확정되었다는 듯이 조급하게 공표해 왜 국민의 공분을 자초했나. 의전은 왜 또 그렇게 허술했나. 이렇게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인해 정부 스스로가 국민의 불만과 실망감, 낙담과 모욕감을 자초했음에도 속 시원한 해명을 들을 수 없다.
야당 의원들은 대한민국의 외교를 통탄하기 이전에 왜 이리도 내부적인 공방에 집착하면서까지 우리 외교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려 하는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위상에 걸맞게 더 이상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한 기업인의 유작 제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안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우리의 속담과 같이 무지하고 무식할 경우 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외교는 외국을 상대로 교류하는 행위다. 따라서 교류를 통해 우리의 국익을 취하기 위해서 상대국의 문화, 전통, 관습, 역사 등을 익혀야 하는 것은 외교의 필수 조건이다. 이들 조건에서 이뤄지는 교류만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서로 다른 가치, 문화와 전통 습관을 가진 나라와의 외교가 기대치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사전 협의와 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같은 제반 정지작업을 의전이라 한다. 의전은 사전 조율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합의된 의전이 예상대로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상 밖의 변수로 인해 변화와 조정이 불가피해질 때가 더러 있다. 따라서 외교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되었다는 뜻이다. 외교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생물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영국 국왕 조문 외교에 대한 논란도 우리가 우리의 조문 전통에 끼워 맞춰 보다보니 빚어진 것이다. 외국의 장례절차는 우리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특히 서구의 장례는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관에 안장된 망자에 작별을 고하는 ‘고별식(wake service)’가 있고 다른 하나는 망자의 시신 없이 망자를 추도하며 예배를 올리는 ‘추도식(funeral 또는 memorial service)’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장지에 관을 매장하는 ‘매장식(burial service)’이다. 서구에서는 어떠한 장례 방식에 참석해도 이를 조문한 것으로 간주된다. 특이한 사실은 이런 의식이 우리의 3일장과 같이 같은 기간이 아닌 각기 다른 날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또한 각 의식마다 친분관계에 따라 참석자들의 성분도 달라진다. 공인의 경우 고별식은 통상적으로 공개된다.
이번 국왕 장례식에서는 영국 측마저 예상치 못한 수의 조문객 인파가 몰려드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결과는 많은 해외 귀빈들도 여왕의 고별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측은 참석인의 수가 통제 가능한 추도식에 이들의 참석을 유도했다. 이 같은 돌발변수의 출현으로 우리 대통령의 조문 외교 행보의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 경험도 없는 이들이 이를 두고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은 안하고 육개장만 먹고 왔다’는 우리의 조문 방식으로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들의 대통령 외교 폄훼 발언을 무지, 무식, 무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또 하나 문제되는 것은 다자회의의 속성에 대한 무지에 있다. 다자회의에서 격식을 갖춘 양자회담을 갖는 것은 주최 측에 별도로 회담장의 설립을 요청하거나 제공받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다자회의장이나 다자행사가 도떼기시장과 같이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엔과 같이 주인 없는 장소에서 의전과 격식을 갖추기 위한 양자회담을 위해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엔과 같은 다자회의장에서 정상 간의 양자회담이 ‘약식회담(a pull aside meeting)’의 격식을 갖는 일이 다반사인 이유다. 대개 회의장 내에 서있는 상태에서 잠깐 조우하거나 복도 한쪽에서 대화를 나눈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조우한 자리 역시 미국이 개최한 다자국 행사의 자리였다. 여기서 한·미정상이 회담을 따로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도 과거에 다자회의장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중대하고 긴급한 사안에 대한 논의는 종종 약식회담을 통해 이뤄졌다. 그런데 무질서의 끝판 왕의 자리라 하는 다자회의장에서 이마저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렵다. 이의 비근한 예로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기후협약회의를 들 수 있다. 공식회의가 끝난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귀국 전 중국 측과 결론을 보지 못한 현안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공식화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미·중 외교 실무진은 약식회담의 장소, 시간과 의제 등을 결정했다. 약식회담은 오바마의 출국 예정 시각 한 시간 전으로 잡혔다. 그러나 원자바오 총리는 한 시간을 더 지연할 것을 요청했고, 오바마는 수락했다. 회담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중국 측에서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워싱턴에 폭설이 예보되면서 더 이상의 지연은 불가능해졌다. 폭설이라는 변수가 오바마 마음의 여유와 인내를 앗아가 버렸다. 중국 측에서 그래도 기별이 없자 미국 측은 행동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대통령 수행원들은 원자바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들은 그러나 문전에서 중국 측 비밀요원과 경호원들에게 저지를 당한다. 이들 간에 몸싸움과 고성이 오갔다. 이때 오바마가 나타났다. 이 상황에 오바마는 격분했다. 원자바오의 방에 진입한 순간 분노했다. 원자바오가 오바마를 배제한 채 미국에 반대하는 모략을 미국의 우방국인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과 작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이들에게 미국과 함께할 것을 호소했다. 이에 중국 정부의 인사가 개입하며 오바마가 틀렸다고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자 오바마는 그에게 조용히 앉을 것을 명령하라고 통역에 부탁했다.
이렇듯 다자회의장에서 갖는 약식회담도 돌발변수로 순조롭지만은 않다. 여느 때 같았으면 오바마나 힐러리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폭설이라는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미국 측이 성급한 마음에 먼저 중국 측에 이동해 발견한 광경이 미국에 반기를 드는 나라들 간의 작당 모임이었으니 약식회담도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게 약이 될’뻔한 대목이다.
외교는 이처럼 생물이다. 현장에 있지 않고서 변화무쌍한 현장의 분위기와 판세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돌발변수의 출현 이유마저 이해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과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 정확히 설명해줘야 한다. 야당도 우선 이해하려는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질타를 할 때는 격에 맞게 해야 한다. 국민 주인의식을 호도하며 국민의 수준을 폄하하는 식의 무지하고 무식한 비판은 삼가야 한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려는 의원들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야당 의원들은 우리나라의 위상과 수준에 맞게 대통령과 정부를 질타할 것을 국민으로서 간곡히 청한다. 더 이상 국민을 호도하고 모욕하지 않길 바란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