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中의 '北비핵화' 대차대조표 따져보자

2022-09-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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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지난 8월 말 한·중 양국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양국 수도에서 간략히 개최되었다. 지난 30년 뒤돌아보면 한·중 양국간 관계도 많은 발전을 거듭해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최고 단계로 격상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다. 이는 양국이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상 중요문제에 대해서 전략적 협의를 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신뢰하는 관계라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 안보의 최대 위협인 북핵문제도 1차 핵위기가 발생한 후 30년이 경과하였다. 한·중 양국관계와 북핵위기는 서로 엮인 채 다른 변주를 해가며 지난 30년을 이어왔다. 그런데 우리 국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사안 모두가 30년이 지난 지금 심각한 질적 변화를 겪고 있기에 이 두 문제 간의 상관관계와 변주의 과정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 우리 정부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생각하고 외세의 개입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본질상 국제사회의 안보위협이기도 하기에 남북한의 손을 떠나 곧 국제문제화 되어버렸다. 그 이후 역대 정부는 중국이 북한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북핵 해결을 중국에 의존하려는 심리를 가졌다. 이것이 우리의 대중외교가 계속 저자세적인 경향을 보인 이유였다. 혹여 우리가 북경의 심경을 건드려서 중국이 핵문제에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한반도의 안보위기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30년간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의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중국은 늘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나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이다’라는 입장을 반복하며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중국은 항상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즉 중국은 자국이 경제개발에 전념하는 동안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입장은 북한의 핵개발 자체는 자국의 국익에도 반하는 것이지만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하여 북한을 과도하게 압박하여 정권의 안정을 흔들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달리 말한 것이다.
 
또한 지난 30년간 북한 핵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북핵문제가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북한의 안보적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라는 입장도 되풀이 해왔다. 이것은 대체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자 중국의 전략적 판단이기도 해 2004-06년간 6자 회담 협상과정에서도 중국은 이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중 수교를 한 이후 처음 15년간 중국이 우리의 경제협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점이었음에도 우리는 우리의 외교적 지렛대를 중국측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국의 설명만 믿고 게다가 중국 시장의 매력에 혹해 중국이 북한의 핵 질주에 제동을 걸도록 압박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또한 한·중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도 거의 유명무실하여 우리는 북핵해결을 위한 우리의 전략적 입장을 관철하기는커녕 중국의 성의를 그냥 기대하는 정도에서 대중관계를 지속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지난 6월 핵무기를 국가의 정체성, 즉 국체라고 표현을 하였고 9월 초에 핵을 법제화하여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이로써 지난 30년간 북한 비핵화를 위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우리나라는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 실존적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원칙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입장만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북핵문제에 직면하여 지난 30년간 우리 정부가 중국의 영향력을 기대하며 중국에 쏟았던 외교적 노력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수교 30주년인 지금 이 계산서를 보면 앞으로 한·중 관계 30년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가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중국의 대한반도 전략 자체가 본질적으로 북핵문제에서 중립적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북핵 위기 전반 15년 동안은 중국이 어느 정도 기울였다고는 할 수 있다. 그 결과 2005년 9·19 합의를 베이징 6자 회담에서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6자 회담 합의 이행이 2008년 마지막 관문인 ’핵검증‘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6자 회담 자체가 좌초되어 버리자 그 이후 중국의 역할도 사라져 버렸다. 사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대하여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방조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는 2008년 이후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일취월장하는 데 직·간접으로 기여한 흔적마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중국은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가 가해지는 가운데서도 북한 정권이 타격을 입지 않을 정도로 항상 뒷문을 열어두고 지원을 해온 흔적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중국의 비협조적 태도에 대해서는 미국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제재를 위반하는 중국 기업이나 단체에 대한 소위 세컨드리 보이콧을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 불포기를 선언한 이제야 미국 의회는 중국에 대한 제3자 제재를 거론하고 있다고 하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리고 북한이 여러 제재 속에서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급속도로 발전시킨 것은 중국의 묵시적 후원이 없으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사일 비행경로 유지와 같은 핵심적인 기술과 정밀 부품, 특히 북한 미사일 이동발사대 차량 등은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도입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종류이다.
 
앞으로 미·중간 갈등이 패권경쟁으로 발전해 나가면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자국의 세계 전략상 아주 중요한 카드가 될 것이기에 더욱 북한을 자기 편에 붙들어두려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협조를 더 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더 이상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에 저자세 외교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국의 세계전략에 어긋나는 정책을 우리가 부탁한다고 중국이 들을 리 없기에 중국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이제 정말 바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 한 ’습관적 호감에 입각하여 타국을 대하는 국가는 이미 어느 정도 노예이다‘라는 말은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이제는 차라리 북한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중국이 방치할 경우 자국의 국익을 해치겠다는 판단이 서도록 우리의 정책을 변경해 나가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북한과 한반도를 미국과 경쟁구도 속에서 바라보는 중국, 양측을 동시에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리도 기존의 정책을 답습하기보다는 과감하게 다른 행보를 보여야 할 시점이다. 한·중 수교와 북핵외교 30년이 지나는 이 시점에 중국의 선의에 대한 걸기대(乞期待)를 접고 우리가 나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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