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尹의 편향된 교육철학… 혼돈의 교육정책

2022-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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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교수]

“대학 수시모집 경쟁률 서울-지방대 격차 3년 연속 커졌다”. 2023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 결과에 관한 모 언론사 기사 제목이다. 미충원이 예상되는 대학의 80%가 비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분석에서 의약계열 지역인재 선발 의무, 지방대 육성 정책 등 백약이 무효하게 여겨진다.

원서접수 기간(9월 15일)에 교육부는 대학정원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감축 인원 1만6197명 가운데 비수도권 대학에서 1만4244명(88%)을 줄인다고 한다. 악순환의 결과로 보이지만 이제 수험생의 외면과 교육부의 정원 감축으로 지방대학의 폐교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당연히 지방 소멸은 예정된 수순이다.

우울한 소식은 초·중등교육에서도 들린다. 정부는 6~21세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 따라 공립학교 교원 정원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동결한 사례는 있지만, 교원 정원의 감축은 사상 초유의 조치여서 학교 현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리라 예상된다. 교총은 “과밀 학급이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교원 정원을 줄이면 학생 학습권, 교사 교권은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유·초·중등부터 대학원까지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체제는 학령인구 감소로 대전환의 단계에 들어섰다. 전 국민이 교육전문가를 자처할 만큼 교육열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대전환은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동반한다. 그런데 이 복잡하기 짝이 없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교육정책이 현 정부에서 표류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기껏해야 경제정책의 하위 범주로서 교육정책이 수립·실시되는 정도에 그친다. 여기에는 교육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편향적인 시각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의 교육철학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특이했다. 작년 이맘때 국립안동대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격의 없이 나누었다는 대화의 내용은 눈과 귀를 의심할 만한 수준이었다. “임금에 큰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큰 의미가 있겠느냐.” 험난한 취업시장 진입을 애둘러 표현했다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절박한 심경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언설로 보인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인문학 교수인 필자가 받은 충격과 모욕은 차치하고, 전 국민의 마음을 보듬고 정책을 구현해야 하는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분의 자세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편향적인 교육관은 반도체 사랑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교육부는) 경제부처란 생각을 갖고 산업부, 중기부, 과기부와 함께 인력을 양성하라.”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교육부에 주문한 발언들이다. 이미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에서 교육을 ‘과학기술교육 분과’의 하위에 두었을 때, 교육 분야의 비중이 축소되고 최소한의 자율성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교육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윤석열 정부의 올바른 교육정책 부재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출한 칼럼은 참으로 씁쓸했다.

편향적인 교육관은 교육부 장관 인선의 난맥으로 이어졌다. 최초의 내정자(김인철)가 낙마하고, 두 번째 내정자(박순애)는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장을 받았다. 무수히 제기된 도덕적 결함과 별개로, 장관은 교수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고 교육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었다. 교육전문가에 대한 신뢰 상실 말고 다른 근거로 해석하기는 어려웠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취학 연령 5세 하향’ 정책을 발표한 장관은 학부모들의 격렬한 항의를 견디지 못하고 35일 만에 사퇴했다. 교육 분야에서 일어난 참사였다.

현재까지 교육부 장관은 공석이다.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서 장관 없는 맹탕 국감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는 가운데 언론에는 교육부 장관 내정자에 관한 ‘설’이 기사로 뜬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 장관 이주호, 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의 입각설이 유력하게 대두된다. 돌고 돌아 또 이명박 정부의 인사로 낙점되는가? 인재풀이 너무 좁은 게 아닌가? 의구심이 난무한다.

자칭 경제 대통령 아래서 이주호 장관은 고교서열화와 경쟁교육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을 구현했다. 자사고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고교다양화 300’ 정책,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실시 및 평가결과 공개 등 그는 단연 경쟁교육 신봉자다. 그런데 현재 고등학교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을 앞두고 다양한 세부정책을 다듬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경쟁교육 신봉자가 교육부 수장에 오른다면, 교육 현장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이주호 교수는 지난 3월에 사실상 교육부 해체 의중을 내비친 ‘대학혁신을 위한 정부개혁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교육부의 대학정책 기능은 총리실로, 대입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로, 산학협력은 과기정통부로, 전문대 지원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자고 주장했다. 교육부 해체론자가 교육부 수장에 오르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은 논란을 예고한다.

대통령은 교육에 관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한 적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체제에 대한 인식이 그리 깊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교육계에 대한 신뢰 또한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으로서 그에 맞는 인재를 배출해야 그 위상을 누릴 수 있다. 인재 배출은 교육전문가인 교수와 교사의 몫이다. 대통령은 당연히 그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그들의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반도체 인재 양성도 가능하다. 그런데 반도체 인재만 양성해서는 부족하다. 진부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구글과 애플이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하는가? 인문학 없이 휴먼테크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 아닌가?

교육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부족은 정책의 오류로 드러날 개연성이 높다.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른 학제개편과 지방시대위원회의 문제를 중심으로 짚어보자.

지난 7월, 취학 연령 5세 하향 정책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할 만큼 느닷없이 발표되었다. 사실 취학 연령 조정은 오래전부터 학제개편과 함께 논의된 사안이었지만, 이 숙성되지 않은 정책은 학부모를 설득하지 못한 채 격렬한 항의에 직면했다. 학부모가 수긍하지 못하는 교육정책은 결코 구현되지 못한다. 자식의 미래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항의도 거의 민란 수준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장관은 사퇴할 빌미를 찾은 듯이 홀연히 떠났다. 이 사태는 대통령에게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결코, ‘대통령은 국민을 이길 수 없다.’

학제개편과 관련하여 독일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독일에서는 원래 대학진학까지 초등 4년과 중등(김나지움) 9년, 총 13년이 걸렸다. 또한, 대학에는 학사과정이 없어 졸업장은 석사학위(Magister 또는 Diplom)를 가리켰다. 그래서 독일 학생의 노동시장 진입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현저히 늦었다. 유럽연합이 출범하고 노동력의 교류가 본격화하자 사회문제가 되었고, 그에 따라 볼로냐 프로세스*에 맞게 학제를 변경할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1999년 이후 지난한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 김나지움은 8년으로 줄었고, 대학에는 학사과정(B.A.)이 생겼다. 무려 200여 년 만의 학제 변화였다. 결국, 학제개편은 국가적 인력양성의 비전 아래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치밀한 세부정책이 마련될 때 가능하다는 교훈을 제시한다.

현 정부는 ‘지방시대’ ‘지방대학 시대’를 열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를 이행할 목적으로 기존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한 대통령 자문기구 ‘지방시대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두 위원회의 특별법을 통합한 새로운 특별법을 통해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과 자치분권으로 지역이 주도하는 균형발전을 추진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어디서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두 특별법이 지닌 상징성이나 기능과 업무상 내용의 차이를 고려하면, 지방시대위원회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보다도 문제의 핵심은 지방시대위원회의 위상이 예산편성권과 집행권이 없는 자문기구라는 점이다.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 없는 자문기구가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정책 수립과정에서 예상되는 무수한 갈등 요인을 어떻게 제어할지 의문이다.

여기서 반면교사 삼아 우여곡절 끝에 9월 27일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교위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교육 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및 교육제도 개선 등에 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이다. 이런 위상에 대해서 출범 당시부터 국교위는 방송통신위원회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처럼 정부조직법상 중앙행정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반론이 거셌다.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내년도 예산에 반영된 국교위의 예산과 조직은 행정위원회에 걸맞게 왜소하기 짝이 없다. 예산 88억, 조직 31명. 방통위나 개인정보위와 비교하면 각기 4분의 1 또는 5분의 1에 불과하다. 교육부의 정책 독점과 전횡을 막고 명실상부한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기관으로서 탄생한 국가교육위원회가 오히려 교육부의 정책 기능을 보조하는 심의·자문기구에 그치거나, 아무리 좋게 봐도 교육부의 정책 추진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럴진대 국가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이라는 국가적 운명을 짊어진 지방시대위원회가 또 하나의 자문기구로 탄생하여 역할과 임무를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에너지는 교육열이다. 이제는 그 에너지가 끓어 넘쳐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유·초등부터 대학원까지 미래세대가 맞이하는 사회에 맞는 인재를 배출하는 선진국형 교육체제를 수립할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았다. 4차산업혁명, 기후정의, 새로운 에너지원 등 우리 앞에는 전대미문의 도전 과제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논리에 종속된 교육철학과 그에 기반한 교육정책이 현 정부를 지배하는 듯이 보인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의 투자를 지극히 아까워하는 한편,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개인의 무한한 교육투자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기류가 여전히 강하다.

정부에 당부한다. 교육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인재를 두루 기용하여 난국을 타개하기를. 당연히 교육전문가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지방시대’와 ‘지방대학 시대’가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방시대가 와야 국가균형발전도 실현되고, 2등국민이 없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볼로냐 프로세스 :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단일한 고등교육제도를 설립하고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자 1999년에 출범한 프로그램.]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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