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러시아와 거리두기 나선 중국의 속셈

2022-09-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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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와 밀월 관계 지속은 중국의 글로벌 입지 약화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7개월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수세에 몰린 러시아의 벼랑 끝 전술이 절정에 달하는 분위기다. 푸틴 정권이 30만 명 예비군 동원령을 발표하고, 핵무기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심지어 100만 명까지 동원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흘러나오면서 푸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젊은이들의 러시아 탈출 행렬이 꼬리를 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반전되고 있다. 혹독한 겨울철에 유럽에서의 전쟁 수행은 매우 쓰라리다. 푸틴의 이번 조치가 끝내기 순서인지 아니면 확전으로 치달을 것인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사태 장기화에 따라 전통적 러시아 우군들의 동요하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우선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태도가 변하고 있다.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지만 거리두기에 나서면서 확전을 피하고 휴전을 하라고 종용한다. 전쟁 중단을 위해 서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한 중재에 나설 것을 피력한 것도 주목할만하다. 이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시진핑 3연임을 앞두고 국제정세의 불안 지속이 중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또한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중국 경제에도 치명적인 손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무차별적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협력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러시아만을 보고 가기엔 중국 경제의 글로벌 연결고리가 너무 큰 것이 이유다.
지난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에서 불협화음이 생겨났다. SCO는 2001년 6월 중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이 설립했다.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2017년 정식 회원국이 됐고, 아프가니스탄·벨라루스·이란·몽골이 옵서버 국가로 참여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캄보디아·네팔·튀르키에(터키)·스리랑카 등은 파트너 지위에 있으며, 최근 이란의 가입 서명 절차가 진행됐다. 이집트와 카타르는 대화 상대국 지위를 부여받았고, 바레인·쿠웨이트·몰디브·미얀마·사우디아라비아는 같은 지위를 위한 절차를 개시했다. 미국 등 서방 동맹에 대응하는 기구이지만 위기만 양산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이들 중엔 수시로 서방 진영을 왔다 갔다 하는 국가도 수두룩하다.
 
인도의 경우 러시아 편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는 관계가 좋지 않다.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에 참여하면서 중국에 맞짱을 뜨고 있다.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이제 평화의 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관계가 깊은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제재와 치솟는 달러 가치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예외일 리가 없다. 독일의 숄츠 총리가 러시아로부터 공급이 중단된 원유나 천연가스의 대체 공급기지를 찾기 위해 사우디 등 중동 국가 순방에 나선 것도 눈길을 끈다. EU가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를 위한 적극적인 중간 역할에 나선 것도 SCO 체제의 균열을 부추기고 있다.
 
서방 동맹은 똘똘 뭉치지만 중국 편 국가들은 국익에 따라 수시로 변신
 

한편으론 중동판 쿼드인 I2U2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인도·이스라엘·UAE가 이에 합류한다. 종교나 색깔이 다르지만, 국익에 기초해 전략적으로 뭉친다. 중동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처지에서 보면 당황스러운 일이다. 인도는 중동으로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UAE라는 전략적 파트너를 확보하는 셈이다. UAE는 미국과 소원해진 사우디의 틈새를 파고들면서 중동에 더해 지중해 지역으로까지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중동의 허브 역할을 더 공고히 하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이 포럼이 성공적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잉태하고 있는 신(新)냉전 시대의 글로벌 질서다.
 
중국과 러시아는 파트너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서 한배를 탔다고 하기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해관계에 따라 러시아가 중국을 배신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를 경험한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맞설 수 있는 반대 진영의 선두주자가 중국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대외에 천명한다. 푸틴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지만, 힘의 균형추가 중국에 기울어지면서 러시아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있음을 익히 간파하고 있다. 중국의 깃발 아래 동조하는 국가를 규합한다. 하지만 중국의 계산식도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다. 계속 러시아 편에 서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셈법이 새 나온다.
 
“적(敵)의 적(敵)은 나의 친구이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올 3월에 발표된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라자라트람 국제전략문제연구소(RSIS)의 보고서대로 중국이‘또 다른 생각(2nd Thought)’ 혹은 ‘급격한 변신(Sudden Move)’을 내릴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당겨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동맹은 철통같이 뭉치고 있는 반면에 중국 편에 서 있는 국가들이 수시로 변신하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칫 중국이 쥐고 있는 중요한 패마저 쓸 기회를 잃어버리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공산이 크다. 러시아와의 밀월 관계 지속이 일시적 이익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손해가 더 커지는 손익계산서가 나온다.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면 현명한 대처가 가능하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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