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엔저로 추락하는 일본 경제 …한국도 日전철 밟을라

2022-09-2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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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엔화의 걷잡을 수 없는 추락으로 일본이 이르면 올해 세계 3위 경제대국 자리마저 내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09년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준 지 13년 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9일 "달러당 엔화 가치가 140엔 수준을 유지하면 올해 달러 기준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조9000억 달러(약 5421조원)로 30년 만에 4조 달러를 밑돌게 된다"고 보도하면서 "올해 달러 기준 일본의 명목 GDP가 30년 만에 4조 달러를 밑돌게 돼 독일과 거의 같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일본의 명목 GDP를 553조엔(약 5373조원)으로 예상했다. 달러당 엔화 가치를 140엔으로 환산하면 3조9000억 달러로, 1992년 이후 처음 4조 달러를 밑돌게 된다. 이에 따라 1992년 15%에 달했던 세계 GDP에서 일본 GDP가 차지하는 비중은 4%를 밑돌게 된다. 1970~1980년대 당시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배경으로 일본이 미국 자산을 마구 매입하면서 세계경제를 풍미했던 화두가 ‘일본 경제가 언제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인가’였던 점을 회상해 보면 일본 경제의 추락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경제의 추락은 이미 “잃어버린 20년”부터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20년”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간 성장률이 연평균 0.77%, 인플레이션율이 연평균 0.11%를 지속하면서 일본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가라앉힌 현상을 말한다. 승승장구하던 일본 경제가 1992년부터 저성장을 지속하면서 당시 사회에 진출하던 세대가 잃어버린 세대로 추락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많은 원인 분석이 나왔다. 대체로 1985년 플라자회담으로 1985년 달러당 240엔 수준이던 엔·달러 환율이 1995년에 94엔까지 하락하는 등 엔화가 지속적으로 크게 평가절상된 점을 들고 있다. 또 하나는 1980년대 중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었던 자산시장 버블이 엔화 고평가 등으로 꺼지면서 개발업자들에게 대출을 했던 많은 금융회사들이 부실더미에 올라앉게 되었고 이러한 경제사회 불안을 배경으로 1993~1996년 집권했던 무소속과 사회민주당이 재정 부담 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복지정책을 추진해 재정 악화가 시작된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번 악화되기 시작한 재정은 걷잡을 수 없게 돼 1992년 73.7%였던 국가부채/GDP 비율이 2012년에는 237%까지 급등해 주요국 중 가장 높은 국가부채비율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엔화가 기축통화일 뿐만 아니라 미국과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있어 이처럼 높은 국가부채비율에도 대외 신인도 하락에 따른 외환위기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재정정책을 집행하는 데 제약이 뒤따르게 되고 금융회사 부실로 대출이 어려워져 기업 투자도 위축되어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가계소비도 부진하게 되어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 2012년 고 아베 전 총리가 집권하면서 시작된 '아베노믹스'다.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는 성장률이 1%대를 회복했으나 여전히 부진한 상태를 지속하면서 막대한 국가부채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드디어 세계 3위 자리마저 내놓을 상황까지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경제 성장률(전기 대비)이 0.7%를 기록해 1분기 0.6%에 이어 2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지속했다. 금년 들어 성장률 부진은 무엇보다도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민간소비도 저조한 데다 투자마저 부진한 데 따른 것이다.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미국·중국 등 글로벌 경기 둔화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은 수출 감소에다 금리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까지 겹쳐 성장률이 0%대로 주저앉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이 유달리 성장 추락 현상이 크게 나타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38개 OECD 회원국 중 2분기 통계가 미발표된 5개국을 제외한 33개 OECD 회원국에 중국·인도네시아를 포함한 35개국의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0.7%로 20위였다. 한국은행은 수출 감소에다 금리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까지 겹쳐 하반기 경제성장이 더 힘겨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 8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성장과 관련해 "최근 들어 투자와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 모멘텀이 점차 둔화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되면 4분기 연속 0%대 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경제의 대외 신뢰도 하락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국 금리 인상과 겹쳐 한국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속한 유출을 초래해 외화유동성 경색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국가부채로 재정정책을 사용할 여지가 없고 금융 부실이 증가하고 막대한 가계부채로 소비도 침체하고 있는 등 일본 경제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국가채무/GDP 비율이 50%에 육박했다.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GDP 비율은 이미 130% 내외 수준까지 급증해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재정정책 운용에 제약이 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 중 하나는 이처럼 낮은 성장률마저 근년에 한국 기업의 외국 투자가 급증하면서 한국의 고용 사정과 상당 폭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감소한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투자 역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7월 산업부가 발표한 해외직접투자 유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액(신고 기준)은 2021년 상반기 대비 15.6% 감소한 110억9000만 달러에 그쳤다. 이에 비해 2022년 1분기 한국에서 유출된 해외직접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123.9%) 늘어난 254억 달러를 기록했다. 직접투자의 국내 유입보다 해외 유출이 더 큰 투자 역조 현상은 2021년 사상 최대치인 807억 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4년 이후 7년간 5배 증가한 수치로 투자처로서 한국의 매력이 경쟁국에 비해 낮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국민계정 기준 연도 개편 시 가공 및 중계 무역의 거래 발생 시점이 '국경 통과'에서 '소유권 이전'으로 변경되어 경제적 실질이 한국에 묶여 있는 기업들의 해외 생산 역시 우리나라의 상품 수출과 GDP에 포함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가 늘어나도 GDP상 투자는 늘어나고 성장률도 올라가 한국 내 고용 사정과는 괴리가 커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0%대를 지속하고 있는 GDP상 투자보다 한국 내 고용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가 예고되고 있는데도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리도 올려야 하고 막대한 국가부채로 재정정책도 한계에 봉착해 있어 전통적인 거시경제 수단은 대부분 막혀 있다. 해법은 법인세 인하, 규제 혁파, 노동 개혁 등 미시정책으로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해 국내외 기업이 더 많이 한국에 투자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법인세 인하는 여소야대 국회에 막히고 규제 개혁은 요지부동의 규제 당국인 공무원들이 경제 운용을 장악해 요원해 보인다. 노조 파업으로 기업이 손해를 입어도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제안되어 있는 등 노동 개혁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으니 한국 경제도 이제 추락하고 있는 일본 경제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오정근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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